지난 3월, 김해 한림면 공장 단지 내에 있는 SPACE 사랑농장에서 기획 전시 <오래된 미래>가 개최됐다. <오래된 미래>는 코로나19 사태로 (재)김해문화재단의 지원이 끊기면서 활동 기회를 잃은 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 세라믹창작센터의 입주 작가들이 펼친 전시다. SPACE 사랑농장을 운영하는 김도영, 송성진, 이창운, 이창진 작가는 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 입주 작가들의 소식을 듣고 먼저 제안해 공간을 내어주고, 전시를 후원했다. 작가들은 전례 없던 위기를 그들만의 ‘협력’으로 대응했다.
SPACE 사랑농장은 지난 5월의 정식 개관을 치르기도 전에 공간의 역할을 해낸 셈이다. 이곳은 예술의 다양한 가능성을 실험한다. 예술가들의 실패를 수용하고, 전시 기회를 제공하여 예술가들이 자신의 역량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공간이다. 연말까지도 여러 개의 전시가 예약된 현황. 예술가들의 사랑 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는 ‘SPACE 사랑농장’의 네 작가를 만나 봤다.
예술인 연합AAA는 시각 예술가 4명(김도영, 송성진, 이창운, 이창진)으로 구성된 예술 단체다. 지역 제한 없이 전국적으로 예술 활동을 이어가고 있으며, 4명 중 세 작가가 부산 출신인 덕에 인근의 김해가 종종 활동 영역이 되었다. 올해 5월 김해 한림면 신천리 공장 단지에 아티스트-런-스페이스인 ‘SPACE 사랑농장’을 정식 개관하기도 했다. 처음부터 김해에 공간을 만들고자 한 건 아니었다. 전국을 다니는 이들이기에 김해는 여느 지역처럼 지나쳐 갈 활동지였을 수 있다. 공간의 계기가 된 건 지난해 봉하창작센터 입주 작가 공모였다.
김도영, 송성진 작가는 2019년 봉하창작센터 입주 작가로 선정, 약 4개월간 활발한 프로젝트 활동을 펼쳤다. 두 작가는 봉하창작센터에서 ‘리서치 프로젝트’를 통해 유휴 공간을 찾으며 시민과 지역, 예술가 모두 만족할 수 있는 예술 공간에 대한 실험을 했다. 또, 시민들과 함께하는 워크숍과 김해한옥체험관 내 전시에도 참여했다. “봉하창작센터 입주가 SPACE 사랑농장의 시발점이 됐다고 말할 수 있어요. 작년 이맘때 창작센터에 머무르면서 김해를 한참 돌아 다녔던 기억이 나요.”
당시 김해 일대를 살피던 두 작가는, 서로 같은 생각을 했다. “여러 지역을 다니면서 지역이 문화 예술 쪽으로 얼마나 잘 접목해 있는지를 보게 되더라고요. 또 저희가 지내던 봉하창작센터가 김해문화재단 소속이다 보니 김해의 문화 예술 상황에 대해서 빨리 터득할 수 있었어요. 저희가 본 김해는 공연이나 생활 문화 분야로 중심이 잘 잡혀 있는데, 시각 예술 쪽으로는 소외되어 있다고 느꼈어요. 우리가 여기서 시각 예술의 활성화 역할을 해보는 건 어떨까 생각했죠.”
우선 이곳에 터를 잡고자 했다. 김해에 머무르면서 타 분야만큼 시각 예술 또한 향유할 수 있는 지역으로 만들자고 결심했다. 김해를 향한 한낱 아쉬움 이었다면, 욕심에까지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누구에게나 수고스러울 줄 알면서도 정성을 쏟게 되는 것이 있다. 두 작가에게는 김해가 그랬다. 우리가 매일 만드는 시각 예술이 없는 동네. 김해를 향한 애정은 이들의 삶과 ‘다름’에서 시작된 걸지도 모른다. 예술인들에게 낯섦은 늘 좋은 영감의 소재이니까 말이다.
두 작가의 막힘없는 실천은 생각지 못한 대상을 만들어 냈다. 그게 바로 SPACE 사랑농장이다. “굉장히 우발적이었어요. 공간을 갖고 싶다는 얘기는 오간 적이 없었거든요. 알고 지내던 후배가 한림 공장 지대에 작업실이 있었는데, 후배도 저희가 하던 ‘터’에 대한 고민을 알고 있었어요. 어느 날 작업실 옆에 공간이 남았는데 관심이 있냐며 물어봤죠. 보러 갔더니 참 마음에 들었어요. 저희가 사용하겠다고 했어요.”
이 공간이 더 뜻깊은 이유는 두 작가만이 아닌 예술인 연합AAA의 네 사람이 함께 들어섰기 때문이다. 김도영 작가와 송성진 작가는 봉하창작센터를 포함한 전시 등 여러 활동을 통해 안면이 있었고, 송성진 작가, 이창운 작가, 이창진 작가 세 사람도 학교 선·후배, 부산 지역 작가로 활동하며 친분이 있었다. 네 작가가 한자리에서 처음 만난 건 2018년 김도영 작가의 ‘ARTSQUAT PROJECT AAA 프로젝트’ <Unlimited Space in Busan>였다. 부산 다대포 무지개공단 내 폐공장을 일시 점거하여 창작·전시 공간으로 사용했으며 프로젝트 마지막 날 24명의 작가와 연합하여 게릴라 전시 <To Be the Best>도 진행했다. “넷이서 뜻이 잘 맞았던 것 같아요. 프로젝트 이후에도 타 전시, 프로젝트 등으로 교류하며 대화를 많이 했어요. 그리고 작년에 단체로 공식화를 하자고 얘기가 됐죠.”
예술인 연합AAA는 김도영 작가의 또 다른 창작 거점 형식 프로젝트인 ‘NOMADIC RESIDENCY-UNLIMITED SPACE 프로젝트’ 참여를 시작으로, <No Routine>, <Re: Edit>, <Act 43>, <Night Out>, <파종-행동유도>, <Artsquat in Ulsan> 등의 전시 기획 활동을 펼쳤다. 특히 ‘NOMADICRESIDENCY-UNLIMITED SPACE 프로젝트’는 봉하창작센터 입주 당시의 ‘리서치 프로젝트’와 일환으로 유휴 공간을 활용, 예술가들의 창작 공간으로 만드는 목적을 가졌다. 이들이 김해에 시각 예술의 숨을 불어넣는 노력도 마찬가지다. 네 작가의 시선이 ‘예술의 확장과 발현’, 가치관은 ‘예술의 사회적 기능’에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예술인 연합AAA는 다양한 지역의 문화 예술 기관과의 협업을 통한 컬래버레이션과 교육 프로그램, 예술과 사회의 교점이 되는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현재는 여수 예술의 섬 장도 창작 스튜디오에 입주하여 시각 예술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지난 8월 서울 문래창작촌에서 개최한 전시 <SPACE XX와 SPACE 사랑농장의 공간교류전>에 이어 오는 10월에는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의전당에서 열리는 미디어 페스티벌에 참여한다. 이외에도 지역 내 여러대형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계획하고 있다.
SPACE 사랑농장 전시도 함께 준비 중이다. SPACE 사랑농장은 지난 5월에 펼쳐진 개관전 <파종-행동유도>에 이어 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 입주 작가들에게 공간을 내어준 기획전 <오래된 미래>까지 성공적으로 마쳤다. 계획에 없던 공간이지만, 처음 예술인 연합AAA가 다짐한 ‘시각 예술 활동의 선도 역할’을 가장 잘 해내고 있는 곳이다. 타 지역에서도 많은 사람이 전시 관람을 위해 걸음을 아끼지 않고 있다. 원하던 바가 눈으로 보이는 유쾌한 공간이 되어 간다.
“김해에서 시각 예술의 촉매제 역할을 꾸준히 하고 싶어요. 예술도 장르가 다양했을 때, 흔히 말하는 예술의 ‘향유’가 이루어진다고 생각하거든요. 예술가들뿐만 아니라 시민들도 함께 그 향유를 느끼고,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시각 예술의 가치는 이렇게 발현되는 게 아닐까요? 저희는 더 바랄 게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