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은 영혼을 홀리는 마법이다. 처음 듣는 선율에 마음을 뺏기기도 하고, 아무리 긴 세월이 흘러도 잊히지 않고 가슴에 남는 멜로디가 있기 때문이다. 악보를 읽을 수 있는 사람은 일부지만, 음악은 모든 사람을 감동하게 한다. 소리를 찾는 작곡이 감동적인 음악의 시작이다. 작곡가는 음악에 울림을 담아내기 위해 오선지 위에 음표를 그린다. 가야와 김해를 담은 곡을 만드는 백승태 작곡가 또한 음계의 조화를 통해 새로운 마법의 주문을 외우고 있다. 그가 만드는 마법 같은 음악 세계를 들여다보자.
음악적 재능의 발견과 뒤늦은 이해
백승태는 1960년 경남 산청군 단성면 지리산 자락에서 태어났다. 이후 초등학교 3학년 때 부산으로 이사했다. 당시 그는 자신을 ‘음악을 잘 모르는 아이’라고 생각했다. “음악을 잘 몰랐는데, 중학교 3년 내내 음악 교사는 음악 시간 마다 저한테만 질문했죠. ‘왜 이렇게 나만 괴롭히나’ 싶었고 아주 힘들었어요.” 중학교 때의 기억이다. 자신도 모르는 음악적 재능을 처음 알아본 사람이 중학교 음악 교사는 아니었을까. 재능이 없는 학생에게 관심을 가지는 음악 교사는 없었을 테니 말이다. 그는 훗날 자신이 한 여자 중학교에서 음악 교사로 재직할 때, 비로소 그 이유를 이해했다고 말했다. 그 역시 자신의 중학생 시절 음악 교사처럼 무의식적으로 재능을 가진 한 학생에게 끊임없이 질문하고 있었다. “음악에 대한 재능이나 본능, 혹은 열정을 가진 사람, 언젠가는 음악의 길을 걷게 될지 모를 사람들을 만나면 자연스럽게 관심을 두고 끌린다는 걸 비로소 알게 된 거죠.”
“동래고등학교 1학년 때 음악하는 친구를 만났습니다. 이 친구가 ‘함께 음악하자. 작곡 배우자’며 계속 권했고, 결국 친구의 유혹(?)에 넘어가 작곡 공부를 시작했어요. 그 친구가 지금 부산시립합창단에서 작곡과 편곡을 하는 최석태 작곡가입니다.” 백승태는 최석태 등 친구 4명과 함께 음대를 목표로 동래고의 연명희 음악 교사에게 작곡을 배웠다. 그는 당시의 음악 노트를 지금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그 노트에는 음악의 길, 작곡가의 길을 향해 내디 딘 고교생 백승태의 발자국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음악,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소리
그는 “눈으로 보고, 몸으로 겪고, 생각한 모든 것을 조합해서 소리로 표현하는 것이 작곡”이라고 말했다. “음의 높낮 이를 어느 시점에서 잘 줬을 때, 적절한 낮은음과 높은음을 잘 나열했을 때, 그 음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입니다. 음의 높낮이, 음의 길이와 장단이 어우러져 음악이 됩니다.” 좋은 글, 잘 쓴 글을 보면 정확한 단어가 정확한 위치에 있다. 단어가 문장 안 제자리에 있을 때 그 글은 아름답고 좋은 글인 것처럼, 음악도 마찬가지다. 그의 설명은 단순 명료했다. ‘훌륭한 곡’, ‘유명한 음악’에 대한 거창한 설명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소리’라는 설명을 들으니, 음악이 무엇인지 머릿속에 쏙쏙 들어왔다.
그는 작곡의 세계가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순수 창작 음악의 세계에서 더 이상 새것에 관심이 없는 것 같아요. 관객도, 투자도 없지요. 그래서 작곡가들이 힘듭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지금 이 순간에도 전 세계 어디선가 명곡으로 찬사받으며 연주되고 있을 베토벤과 모차르트의 곡도 발표 당시에는 신상품이었습니다. 순수 창작 음악은 계속 만들어져야 합니다. 그것은 미래를 위한 투자입니다. 현실이 그렇지 못해 안타까워요. 특히 더 아쉬운 건 우리 음악, 우리 가곡에 대한 투자가 거의 없다는 사실입니다.”
김해를 담은 노래, 김해 시민들과 함께 부르고 싶어
백승태는 가곡 작곡에 관심을 두고 있다. “가사(말)가 있는 음악을 작곡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말을 할 때 자연스럽죠. 그렇게 편하게 마음에 와닿는 느낌의 선율을 찾습니다.” 1999년부터 김해에서 사는 그는 김해의 역사, 풍경, 정서를 담은 가곡을 많이 작곡했다. “우연히 김해의 아름다운 풍경을 담은 옛 한시 몇 편을 보았어요. 그 시를 보고 큰 감동을 하였습니다. 당시 송은복 시장을 직접 찾아가 이런 시를 김해의 가곡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제의했어요. 시의 지원을 받아 동료 작곡가, 선배들께 부탁해 함께 작곡했습니다.” 합창곡집 <가야 그 혼의 소리-가야의 노래>는 그렇게 세상 밖으로 나왔다.
백승태는 옛 한시뿐 아니라 선용, 전기수, 장정임 등 김해 출신 혹은 김해에서 활동하는 문인들의 시를 노래로 만드는 작업도 꾸준히 해왔다. 그의 ‘김해 사랑’에 감동한 동료 작곡가들도 동참해 여러 곡을 작곡했다. 그는 김해에 와서 가야를 알게 됐다고 말했다. “아무래도 가야가 나를 붙들고 있는 것 같아요. ‘가야’는 고대의 역사뿐 아니라 김해가 간직한 모든 것입니다. 김해는 보물이 많은 곳입니다. 그 보물들을 우리 가곡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 노래를 김해 시민들과 함께 부르는 꿈을 꿉니다. 노래를 부르면 오래 기억되니까요.”
노래를 부르면 오래 기억된다는 말을 들으니 <구지가>가 떠올랐다. 왕을 바라며 구지봉에서 백성들이 불렀다는 그 노래는 선율은 잊히고, 시만 남아 전해진다. 하지만 <구지가>가 있어 김해를 한 번도 와보지 않은 사람들도 김해 구지봉을 알고 있다. 김해와 가야를 담은 노래가 계속 만들어지고, 사람들이 그 노래를 부르는 것만큼 김해를 알리는 아름다운 홍보가 또 있을까. 올해로 4회를 맞이하는 <‘아름다운 김해로’ 전국 성악 경연 대회>도 그 일 중의 하나다.
인터뷰를 마치고 귀한 선물을 받았다. 가곡집 <아름다운 김해로>, <동행>, <경남의 노래> 그리고 노래 엽서다. 가곡집과 엽서에도 김해 사랑이 가득하다. 문득 온 김해 시민이 한목소리로 김해를 담은 노래를 부르는 장면을 생각해본다. 한국인의 ‘떼창’은 전 세계적으로 유명하지 않은가. 김해 시민들이 부르는 김해 노래! 생각만 해도 가슴이 요동친다. 백승태 작곡가는 그런 날을 꿈꾸며 김해와 가야를 작곡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