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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 가져야 할 자세와 시인의 일
김해를 詩로 쓰는 김용권 시인

김해 시민들은 김해 밖으로 나갔다가 돌아올 때 어떤 기분을 느낄까. 김용권 시인은 그 순간을 ‘어머니가 기다리는 집으로 오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김해를 생각하는 마음이 그 말에 오롯이 담겨있다. 김용권 시인을 대성동 고분군에서 만났다.

시는 쓰는 사람의 일상 속 감정이 가장 잘 녹아있는 문학이다. 그 지역의 정서와 자연, 생활 환경까지도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장르다. 김용권 시인은 시에서 김해를 어떻게 그리고 있을지 궁금하다. 그는 1962년 경남 창녕군 남지읍에서 나고 자랐고, 22년째 김해에 사는 ‘김해 사람’이다. 2009년 『서정과 현실』로 등단했다. 들불문학제 대상, 제2회 박재삼 사천지역문학상, 경남문학 우수작품집을 수상했다. ‘석필문학회’, ‘시향’, ‘시산맥 영남시’에서 동인으로 활동 중이다. 시집 『수지도를 읽다』, 『무척』 그리고 올해 2월에 나온 『땀의 채굴학』까지 세 권의 시집을 냈다. 『땀의 채굴학』은 (재)서울문화재단 창작기금 지원 프로그램으로 펴낸 시집이다.

역사와 문화를 아는 것이 시인의 일

김용권 시인은 20대 후반부터 지금까지 사진을 찍고 있다. 그의 시는 사진과 연결돼 있다. “정식으로 사진을 공부한건 아니지만, 사진작가와 공동 작업도 했습니다. 故 최민식 선생님과 함께 전시회도 했지요. 어느 순간 사진이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느낀 이미지를 모두 담아내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이미지를 되살려내는 것이 시를 쓰는 일이었습니다. 사진을 찍었던 경험과 기억이 시 쓰기의 바탕이 되었고, 지금도 많은 도움이 됩니다. 무언가를 포착하고 부각하는 것, 처음 와닿은 이미지를 시로 형상화하는 것은 연결돼 있어요.” 세 권의 시집을 차례로 살펴보면 시인의 시선이 보인다.

첫 시집 『수지도를 읽다』에는 경매 시장의 기억이 담겨있다. “아버지가 농사지은 수박을 트럭에 가득 싣고 부산의 청과 경매 시장에 갔을 때, 최상품이라고 생각했던 수박이 예상한 가격에 미치지 못해 탄식하시던 아버지를 바로 옆에서 지켜봤습니다. 경매 중 사람들의 손짓이 두려웠어요. ‘저 재빠른 손짓으로 땅을 일구며 살아 온 아버지의 노동 값, 사람들의 땀의 값이 결정되는구나, 저 손짓이 삶의 길이고 지도구나’ 생각했지요. 그때의 기억이 담긴 시집이 『수지도를 읽다』입니다.” 그 기억은 시인에게 어떤 순간에도 항상 사람을 바라보는 시각을 갖게 했다. 어떤 일을 하고, 어떤 삶을 살고 있나, 사람은 그 안 어디에 있는지에 대해 늘 생각했다.

『무척』에는 김해의 모습을 많이 담았다. 시집 제목은 무척산을 말한다. <한림정역>, <김해천문대>, <못안마을>, <무척>, <유공정>, <연화사 미륵불> 등의 시는 김해를 사랑하는 시인의 마음이 배어있다.

“김해에 거주하면서 김해의 역사와 문화를 알려고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제겐 옛 지명 하나도 중요했어요. ‘활천고개’라는 지명이 있으면, 그곳이 정확히 어딘지 알고 싶었죠. 옛사람들이 가리키는 활천 고개를 정확히 아는 사람이 점점 줄어들고 있어요. 역사에 기록된 김해와 가야의 역사를 아는 것은 역사학자들만의 몫이 아닙니다. 시를 쓰는 사람은 더 잘 알아야 합니다.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것이 시가 되어야 하니까요.” 김용권 시인은 김해 곳곳을 천천히 걷고, 몸에 새기고, 마음에 담는다. 김해의 산을 오르고, 들판을 걷고, 김해천문대에서 시가지를 내려다보기도 한다.

시로 기록하는 김해

<가야의 언덕>달이 뜨는 언덕 그녀 집은 한 평 반이었다 천년 잠이 머문 그 집은 지표면 삼장 아래 반지하 단칸방과 같아서 한 꺼풀 들추면 저세상 들여다보는 쪽문이 있었다는데, 빈방이었다 빗금 친 항아리는 맑은 볕을 이고 가다 쏟아낸 흔적, 흰 뼈 조개무지는 둥근 식탁에 오른 저녁의 껍질 그녀는 어제 사랑 이야기를 하고 난 오늘 이별 이야기를 한다 보름달이 언덕을 밟아 가던 날 비문 없는 애꾸지 언덕에서 화석이 되어 걸린 빗살무늬 여인의 이름을 불러본다

대성동 고분군은 김용권 시인이 자주 찾는 곳이다. 고분군 언덕 위를 함께 걸으며 그가 말했다. “이곳을 자주 찾아옵니다. 지나는 길에는 언제든 꼭 멈추어 서서 봅니다. 석양이 질 무렵이 가장 좋아요. 언젠가 가을 억새가 무성했을 때 언덕 전체가 붉게 타오르는 듯해서 한동안 넋을 잃고 바라보았죠.” 그는 언덕을 보기 위한 목적으로 고분군을 찾아올 때도 많다. 새벽 일찍 찾아와 아침해가 뜰 때까지 천천히 걷곤 한다. “고분군 언덕 위를 걷고 있으면 오랜 역사가 몸속으로 들어오는 것 같아요. 땅속의 고분, 나무, 바위, 돌, 풀 한 포기, 들꽃…. 죽어서도 오래도록, 함께 살고 있는 중첩된 역사의 흔적이죠. 오래된 역사이면서, 동시에 현재의 김해입니다. 신비롭지요.”

고분군 언덕을 천천히 걷는 동안에도 그는 김해의 역사와 문화를 주제로 끊임없이 이야기했다. 그는 이곳에서 『땀의 채굴학』에 수록한 두 편의 시 <가야의 언덕>과 <순장소녀>를 썼다. 시의 제목에서도 가야를 느낄 수 있다. 이 시집에는 김해와 가야를 그리는 여러 편의 시가 수록돼 있다. 다른 시들도 있지만 김해를 담은 시만 자꾸 펼쳐보게 된다.

<가야의 언덕>을 읽어보자. 가만히 시를 읽어보면 보름달이 환하게 비추는 고분군 언덕이 보이는 듯하다. 21세기의 김해와 함께 살고 있는 가야이다.

김용권 시인은 연필로 시를 쓴다. “볼펜이나 만년필은 첫 획에서 잉크가 안 나올 때도 있는데, 연필은 잘 깎아두 기만 하면 언제, 어디서든 글을 쓸 수 있습니다. 잠들기 전 머리맡에도 메모장과 연필을 둡니다. 잠이 깨면 밤새 생각했던 이미지와 시구절, 간밤의 꿈도 바로 적습니다. 시인으로서의 자세랄까요. 그렇게 늘 ‘글을 잡으려고’합니다.”

연필을 품고, 길을 걷는 김용권 시인은 시를 통해 김해의 이야기를 계속하려 한다. 역사가 아니라 시로 기록하는 김해가 그의 시집에서 한 편 한 편 쌓이고 있다.

글·사진 박현주 북칼럼니스트 작성일. 2020. 04.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