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는 무엇일까. 국어사전에서는 재미를 ‘아기자기하게 즐거운 기분이나 느낌’이라고 설명한다. 이 설명은 어쩐지 재미가 없다. 뭔가 빠진 듯하다. 분명히 좀 더 밝고 강한 기운이 있을 것 같다. 곽지수 JJ창작예술협동조합 이사장은 ‘재미는 희망’이라고 말한다. “재미는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한 희망입니다.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힘이죠.” 그 말을 듣는 순간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우리가 “좀 더 재미있는 것 없을까?”라고 말하고, 유사 이래 인류가 ‘재미’를 찾아다니는 까닭은 새로운 희망과 힘을 원하는 데 있다. 곽 이사장은 ‘재미있는 사람’이다. 필자는 2015년에 곽 이사장을 처음 만났다. 김해아이쿱생협 동료들과 함께 극단 ‘직장동료’를 만들어 연극 <날 좀 보소>를 공연할 무렵이었다. 활기차고, 유쾌한 그의 열정에 금세 빠져들고 말았다. 나도 뭔가 재미있는 일, 그래서 주변 사람들까지 덩달아 행복하게 하는 일을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에 가슴이 뜨거워졌다. 다음에는 또 어떤 일을 벌일지, 무슨 활동을 할지, 얼마나 재미있을지 늘 궁금해지는 사람이 곽지수 이사장이다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주었던 연극 만들기
곽지수는 1969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결혼하면서 1998년에 김해로 왔다. “어릴 때부터 사람들을 웃게 하는 게 좋았어요. 코미디언 해보라는 말을 많이 들었고 그렇게 해야 하나 싶었죠.(웃음)” 그와의 대화는 즐겁다. 이야기도 재미있게 잘하고, 잘 웃는다. “다른 사람들을 웃게 하고 싶다는 건 어쩌면 내가 그들에게 인정받고 싶다는 마음 때문인지도 몰라요. 평범한 주부로 사는 동안, 사회현상에 관해 확인되지 않은 정보들을 이야기하는 게 좀 답답했어요. 연극을 통해 사회 풍자 등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 시작이었죠.”
곽지수는 극단 ‘직장동료’를 만들어 2014년 연극 <두 여자>를 첫 무대로 선보였다. 2015년에는 밀양 송전탑 설치에 반대하는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담은 연극 <날 좀 보소>로 화제를 모았다. 이후 매년 새로운 작품을 선보이며 그동안 10개의 연극을 무대에 올렸다. 주부들이 시작했던 극단은 현재 7년째를 맞이하면서 전문 연극인들이 점점 모여들었다.
그동안 올린 10개의 연극 대본을 곽지수 이사장이 모두 썼다. 그러니 이미 극작가라고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그의 연극을 보면 살아있는 말이 넘쳐나고, 그래서 웃음과 탄식도 절로 우러난다. “올해도 새로운 작품을 준비 중이에요. 그동안 공연을 꾸준히 했으니 올해는 쉬어갈까 하는 생각도 했는데, 단원 한 명이 극본을 쓰는 바람에!(웃음)” 그 말에 필자도 웃음이 터졌다. 그의 재미난 열정이 누군가 또 한 명의 가슴을 뜨겁게 데운 모양이다.
공동체의 행복을 상상하고 현실로 만들고 싶은 열정
곽지수의 열정은 어디까지 이어질 것인가. 그를 아는 많은 사람이 늘 궁금해 하는 일이다. 그는 2018년 가을, 김해시 봉황동에 문화공간 ‘봉황 방송국’을 열었다. 1920년에 건축된 주택을 개조해 만든 시설로 온라인 방송·공연·숙박·모임을 위한 공간이다.
“처음에는 이 집에서 노후생활을 보내야지 하면서 주택을 샀지요. 연극무대도 만들고 싶었고요. 봉황대가 바로 옆이라서 좋았습니다. 그런데 얼마지나지 않아 집이 인근의 48가구와 함께 문화재 추가 예정지역으로 지정됐습니다. 처음 소식을 접했을 땐 집이 금방이라도 철거될지도 모른다 싶어서 충격이 컸죠. 하지만 고민한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고, 주저앉아 있을 수도 없었어요. 답답한 심정을 이야기하고 싶어 유튜브 방송을 시작했어요. 혼자 방송하느라 횡설수설했죠. 그런데 친구들이 ‘그건 내가 좀 도울 수 있는데’, ‘이건 내가 아는 분야인데’ 하면서 모이기 시작하더라고요. 우리는 사라질 수도 있는 집, 가게 등 마을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기기로 했습니다.”
김해 최초의 마을 방송국인 봉황 방송국은 그렇게 시작됐다. 방송뿐만이 아니다. 마을에서 일어나는 작은 행사에도 참여하고, 아기자기한 행사도 만들었다. 봉황동 할머니들과 함께 뜨개질하는 ‘뜨시게팀’을 만들어 겨울에 봉황동 나무에 옷을 입히고, 크리스마스 소원 트리 점등식을 했다. ‘뜨시게팀’이라는 말에서 할머니들의 손길과 따뜻한 마음이 전해진다. 방송국 앞에서 동네 어르신들을 모시고 겨울에는 떡국을 끓여 먹고, 여름에는 팥빙수 잔치를 하며 마을 잔치도 했다.
“작은 잔치라 더 많은 어르신을 모시지 못해 부끄럽습니다. 하지만, 재미있었어요. 답답한 현실이지만, 답답해하면 지는 거잖아요. ‘봐라, 우리는 이렇게 재미있게 살고 있다’는 걸 세상에 보여주고 싶었어요. 동네 어르신들과 자연스럽게 친해진 뒤에는 ‘봉황동 미녀 아나운서’라는 별명도 생겼어요. 어르신들이 예뻐해 주시고, 인정과 지지를 해주시니까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더 예쁘게 잘해야죠. ‘잘 한다 잘 한다’ 하면 더 한다고, 어쩐지 제가 이 동네에 제대로 걸려든 것 같은 기분도 들고….(웃음)” 서로가 걸려들고 새로운 일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아름답다. 이런 것이 사람 사는 일이구나 싶다.
봉황동에서 일하는 동안 곽지수에게는 ‘마을 활동가’라는 이름이 또 하나 붙었다. “마을 활동가가 뭔지 속 시원히 말해주는 사람도 없는데, 그 이름이 덜컥 붙었으니 지역 공동체가 무엇인지 궁금해지더군요. 새로 공부할게 생겼어요. 제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도 더 찾아보고 싶었고요. 그래서 인제대 대학원 융합문화예술학과에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곽지수가 걸어온 길은 딱히 작정하고 온 것이 아니다. 사람들과 더불어 이야기하다 보면 재미난 생각이 계속 나고, 실제로 이루어지면 얼마나 좋을까 꿈꾼다. 그러면 옆에서 ‘한번 해보자!’,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인데?’ 하면서 모여든다. 일이 점점 커진다. “그런 식으로 주위 사람들, 친구들과 함께 자연스럽게 여기까지 왔어요. 상상한 것이 실현되면, 나의 상상이 다른 사람들을 즐겁게 하니까 계속하게 되는 거죠.”
대화를 나누는 동안 그의 눈은 계속 빛났다. 그는 또 무슨 상상을 하는 걸까. 무엇이 되었든 김해의 봉황동에서 일어나는 ‘재미난 일’이 계속 이어지길 바란다. ‘재미는 희망’이라고 하는 곽지수 이사장의 행보가 김해를 행복하게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