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김해문화재단 웹진

search
김해 생림면에서 태어나는 작품
위로와 위안을 전하는 조각가 변대용

2015년 여름, 김해공항에서 대형 조각 작품을 보았다. 그때 본 작품이 지금도 생생하다. 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은 그해 7월 말에서 8월 말까지 김해공항 국내선 청사 로비에서 ‘찾아가는 전시회’의 기획으로 <아웃 오브 블루(Out of the BLUE)> 전시회를 열었다. 아웃 오브 블루는 ‘예상치 못한’, ‘뜻밖’이라는 뜻으로 쓰이는 표현이다. 공항에 어울리는 듯하지만, 어울리지 않는 작품을 설치해 공항이라는 공간에 유쾌한 변형을 준다는 의미를 담았다. 전시회에서 예술 작품은 보는 사람에 따라 예상치 못한 감상과 반응을 일으키는 ‘의외성’을 볼 수 있었던 건, 이 전시회의 또 다른 감흥이었다.

전시회 작품 중 하나가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청사 바닥에 누워 있는 푸른 색깔의 거인, 변대용 작가의 <누워 있는 사람>이었다. 몸이 여러 덩어리로 분절된 한 사람이 손가락을 하늘로 향하고 있는 모습의 조각이다. 손가락 끝까지의 높이가 3m, 몸의 길이가 7m에 이르는 대형 작품이다. 공항을 찾은 사람들은 저마다 신기해하며 눈길을 줬다. “야! 저게 뭐야?”, “거인이다, 거인이 나타났다.” 어른들은 “분위기는 다르지만 운주사 와불이 생각난다”,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는 것이 하늘을 보며 꿈을 잃지 말라고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가장 재미난 반응을 보이는 것은 어린이들이었다. “걸리버 여행기 같아요.” 아이들은 주저 없이 작품으로 달려가 만져보고 기댔다. 아이들에게는 커다란 장난감으로 보이는 모양이었다. 공항 로비에서 느닷없는 전시회를 만난 의외의 즐거움도 좋았지만, 작품을 자기 나름대로 받아들이는 관객들의 반응은 더 재미있었다. 공항의 전시회도, 작품도, 아이들의 반응도 잊히지 않는 장면이다. 변대용의 작가가 김해에서 작업을 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생림면 봉림마을에 있는 작가의 작업실을 찾아갔다.

조각가 변대용, 김해 생림면에 터를 잡다

변대용 작가는 1972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부산대학교 미술학과 조소 전공, 대학원을 졸업하고 부산대학교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2010년 부산청년작가상을 비롯해 여러 차례 작가상을 받았고, 개인전과 컬래버레이션 전시회를 열었다. 2018년 홍콩 하버 시티에서 열린 <북극> 전시회에 참가해 한국 대표 조각가로서의 성과를 이뤘다는 호평을 받았다. 최근에는 지난 5월, 포항시 남구 대잠동 그린웨이 철길 숲에서 <5월의 곰> 전시회를 열었다. 변 작가는 환상과 꿈을 담은 <백곰> 작품을 전시했다. 둥글고 큰 몸집, 매끈하게 표현돼 빛나는 북극곰이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환경 오염과 살아갈 터전을 잃어가는 북극곰이 떠오른다. 북극곰은 치열한 현대 사회에서 설 자리를 점차 잃어 가는 사람들에게 희망과 안부를 전하고, 코로나19로 지쳐가는 사람들에게 위안과 위로를 전했다.

‘곰’은 변대용 작가의 대표 작품이다. 아니, ‘곰’을 본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한다고 하는 게 맞겠다. 변대용 작가의 ‘곰’을 본 사람들은 다른 곳에서 만나도 ‘변대용 작가의 곰’을 알아보는 것이다. 봉림마을에 자리한 그의 작업실로 들어서는 입구에도 양쪽에 곰 작품이 놓였다. 두 마리의 곰과 인사를 하고 보니, 숙소로 쓰는 작은 건물의 베란다를 신화 속의 메두사가 지키고 있다. 옆에는 작업실이 자리했다. 높고 넓은 공간이다. 그곳에서 작품이 태어난다. 변 작가는 9시부터는 작업실에서 일을 시작하고, 6시에는 마치는 규칙적인 일정을 지키고 있다.

곰과 메두사, 그리고 작업실 앞 비탈에 가득 핀 금계국을 보고 있으니 마치 동화 속에라도 들어온 것 같다. “곰과 메두사가 있어서 그런지 처음에는 마을 사람들이 ‘여긴 뭐 하는 곳이지? 놀이동산이라도 들어서나?’ 하면서 궁금해하셨죠. 이제는 제가 뭐 하는 사람인지 다들 아십니다. 만나면 ‘요즘 일은 잘되고 있냐’고 물어봐 주시고 작품도 궁금해하고요. 도시의 아파트는 바로 옆집에 살면서도 누군지 모르는데, 이 마을에 와서 정을 느끼고 있습니다. 어느 순간 정신 차리고 보니 제가 마을길에서 만나는 분들께 인사를 하고 있더라고요. 2년 전 여기로 왔는데, 김해가 너무 좋아요. 여기에서 작업 하면서 김해 예찬론자가 됐답니다. 생림에 계속 지내면서 오래 작업할 거예요. 동료 작가들도 하나둘씩 김해로 들어와 새로 터를 잡고 있죠.”

변대용 작가는 시간이 날 때마다 마음 편한 작업실 공간을 둘 장소를 찾고 있었다. 부산 근교와 경남 지역을 찾다가 이곳을 알게 됐다. 작업실을 열고 마당 앞 비탈에 금계국을 직접 심었다. “제가 시각 예술을 하잖아요. 전 물론 이고 다른 사람들도 보기 좋은 풍경이었으면 했어요. 그래서 오래 피는 꽃, 금계국을 심었지요. 그러다가 식물을 심고 가꾸는 재미가 생겼습니다. 땅에서 뭔가를 키워낸다는 기쁨, 가장 원초적인 노동이 즐거움을 알아버린 거지요. 저보다 먼저 알고 있던 한 작가가 ‘이제 큰일 났네. 그 노동의 즐거움을 알았으니…’ 하더군요. 그 기쁨도 김해에서 얻은 거지요. 조각도 온몸으로 하는 작업이거든요. 비슷한 점이 있어요. 생명을 키우는 것, 작품에 생명을 부여해 존재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요.”

본능이 이끈 조각가의 길

흙을 만지는 일은 변대용 작가가 어렸을 때부터 줄곧 해왔다. “어렸을 때는 장난감이 별로 없던 시절이었어요. 흙장난하면서 뭔가를 만들고, 만화 그림도 그리고… 그림을 잘 그린다고 칭찬 받으면서 화가의 꿈을 꿨습니다. 조각은 본능적으로 끌렸어요.”

숙소 아래층 공간으로 들어섰다. 넓은 책상을 보니 작가가 좋은 생각이 날 때마다 스케치하는 곳이 아닌가 짐작된다. 벽면에는 작품으로 형상화되기 전의 그림이 걸려 있고, 작품도 몇 점 놓였다. 곰, 강아지, 생쥐…. 화사한 파스텔톤의 색감, 부드럽고 둥근 곡선미, 매끈한 표면이 쓰다듬어보고 싶은 마음을 불러일으킨다. “풍성한 양감을 좋아합니다. 풍성한 느낌은 사람을 편하게 하잖아요. 곰을 주제로 한 작품에서 볼 수 있죠. 작업할수록 선은 간결해지는데, 그래서 더 어려워요. 얼핏 보기에는 귀엽고 친숙하지만 자세히 보면 잔혹한 상황에 처한 생명체의 현실도 표현돼 있어요. 양면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지요. 우리의 삶이 그렇잖아요.”

<누워 있는 사람>의 안부가 궁금했다. 작업실에 보관 중이란다. 생림의 변대용 작가 작업실에는 거인이 잠들어있다. 잠든 거인을 메두사가 지키고, 마당에서는 곰이 산책하고, 작가는 아침이 되면 지난밤의 꿈을 작품으로 만든다. 신화와 동화 그리고 삶의 현실이 생림에서 빚어지고 있다.

글·사진 박현주 북칼럼니스트 작성일. 2020. 06.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