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김해문화재단 웹진

search
극단 이루마 이정유 대표, 김해 연극을 말하다
김해 연극을 꽃피운 장본인 이정유

연극은 살아 있는 이야기다. 문자로 쓰여 있는 이야기나 천 번 만 번 똑같은 장면이 반복 재생되는 영상이 아니다. 연극은 눈앞에서 배우의 호흡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장르이다. 연극무대는 살아 있는 배우가 움직이기에 보는 사람의 마음에 직접적으로 와닿는다. 배우나 연극 연출자 역시 관객들의 반응을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다. 사람들의 생생한 반응. 그것처럼 가슴을 뜨겁게 하는 예술 창작의 계기가 또 있을까. 그것은 연극이 가지고 있는 많은 매력 중 하나이다.

김해 극단 이루마의 이정유 대표는 평생을 연극의 매력에 빠져 살기를 원한다. 김해에서 연극의 꿈을 꾸기 시작 했고, 한 걸음 한 걸음 걸었다. 금관가야의 도읍이었던 김해의 옛이야기, 김해가 낳은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무대에 올리는 그의 열정은 해가 갈수록 더 뜨거워진다. 그는 스스로 김해의 연극을 꽃피게 하는 밑거름이 되고자 한다. ‘김해의 연극인 이정유’를 진영한빛도서관에서 만났다. 이루마 극단은 2018년부터 이 도서관의 공연장인 ‘누리마을’에 공연장 상주단체로 선정됐다.

김해에서 연극을 꽃피우겠다는 꿈

이정유 대표는 1974년 김해에서 태어났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연극을 좋아했으나 마땅한 무대가 없어 애태우던 학창 시절을 지냈다. ‘김해에서 연극을 해보자’는 생각은 그때부터 마음 깊이 싹트고 있었다. 1993년 <방황하는 별들(극단 가야)>을 가야외국어학원 강당에서 공연할 때 기획과 연기를 맡아 무대에 올랐다. 연극무대와의 만남은 강렬했다. “<방황하는 별들> 이후로 연극은 제 인생의 모든 것이었습니다. 돌아보면 힘들었던 날도 많았지요. 그 모든 것이 연극을 위한 과정이었습니다. 김해의 연극문화를 꽃피우는 연극인이 되고 싶다는 목표를 향해 걸어가는 시간이었습니다. 연기를 배우고 기획과 무대감독도 맡으면서 많은 경험을 했습니다.” 부산예술문화대학 연극과를 수료하고, 서울문화예술대학교 연극예술학과를 졸업하면서 연극 제작 이론과 무대의 실제 경험을 쌓았다. 그는 ‘연극은 곧 삶’, ‘무대는 진정성 있는 삶을 보여주는 총체적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거의 모든 공연 분야가 그렇지만 지방에서 연극을 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김해에서 연극을 하려면 김해에 극단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은 이정유 대표만의 것이 아니었다. 이 대표는 2004년 3월, 연극에 대한 열정을 불태우는 동료들과 함께 ‘극단 이루마’를 창단했다. 오로지 김해 시민들에게 좋은 공연을 보여주고, 김해 연극예술에 밑거름이 되고, 지역문화를 활성화하는 바탕이 되고자 하는 진심을 담아 만들어진 극단이다. 창단 이후 현재까지 100여회가 넘는 연극무대를 선보였다.

‘이루마’라는 극단 이름은 계속 하나씩 이루어가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목표는 있으나 완결은 없어요. 하나를 이루고 나면 그다음이 있고, 그 산을 넘으면 또 다른 목표가 생기죠. 하나씩 이루어가는 겁니다. 저를 포함해 우리 단원들 모두가 ‘이루마’입니다.” 그는 이루마의 연극을 완성하는 마지막 배우는 관객이라고 말했다. “관객이 연극을 보면서 마음의 변화를 일으키고 꿈과 희망을 품을 때 이루마의 연극이 완성되는 겁니다.” 이 대표는 ‘연극을 하는 이유’를 그렇게 전했다.

관객이 완성하는 연극

이정유와 이루마 극단 단원들은 김해와 가야를 알리는 공연을 끊임없이 해왔다. 그중에서도 2016년 시작한 ‘김해 인물 시리즈’ 연극은 김해가 낳은 인물을 알리는 새로운 무대의 시작이었다. 언제부턴가 그를 만나면 이야기의 주제는 늘 ‘김해 인물’에 맞추어져 있었다. “연극무대에 올릴 김해의 인물로 이런 분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분에 대한 자료를 더 찾고 싶습니다.” 오직 그 이야기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해 인물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으로 <참군인 김오랑>을 창작초연으로 선보였다. 김해가 낳은 참군인 김오랑 중령의 삶을 내용으로 하는 연극이다. 관련 책과 기사를 탐독하고, 김오랑 중령의 유족들을 직접 만나 취재하고, 김오랑기념사업회의 조언도 받았다. 김오랑 중령을 기억하는 김해시민, 그의 의로운 정신을 알고자 하는 김해 청소년 관객에게 큰 호응을 받았던 공연이다. 두 번째는 김해 한림 출신의 민주열사 김병곤의 뜨거운 삶을 담은 <괴물이라 불리던 사나이>다. 두 연극 모두 시대 상황을 다룰 수 밖에 없어 한편으로는 조심스럽고 묵직한 주제이다. 한국 현대사의 주요 장면에서 신념과 소신으로 자신을 희생했던 김해의 인물을 알린 두 연극은 의미가 크다. 세 번째 작품은 임진왜란 때 김해성을 지키다 순절한 네 명의 의병장을 그린 <사충신>이다. 역사 교과서에 기록되지 않았으나, 임진왜란 최초의 의병이었음을 당당히 그려낸 연극이다.

‘김해 인물 시리즈’ 연극을 본 관객들은 김해 시민으로서의 자부심이 느껴진다고 말한다. 문자로 보는 역사가 아니라, 김해의 인물을 생생하게 되살려내어 주는 연극이 고맙다는 분들도 많다. 그리고 다음 인물은 누구일까를 궁금해한다. 이정유 대표는 일본 도예가들이 ‘도자기의 신’으로 부르는 ‘백파선’을 선보일 계획이다. 백파선은 김해 사람으로 임진왜란 때 남편 김태도와 함께 일본으로 끌려가 조선 사기장들과 함께 도자기를 빚었던 인물이다. 분청사기의 고장인 김해에서 백파선을 주인공으로 한 연극이 공연된다니, 그 무대가 벌써 궁금하다.

이 대표는 자신의 성장과 이루마 극단의 발전은 그동안 김해와 경남도가 보내준 성원 덕분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루마 극단을 창단하고 지금까지 오로지 연극 하나만 보고 살아왔다. 그동안 많은 상을 받았고 지난해 연말에는 한국연극협회에서 수여하는 ‘자랑스러운 연극인상’도 받았다. 그는 “제가 받은 상이 아니라 김해의 연극이 받은 상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김해의 연극을 꽃피게 하는 밑거름이 되고 싶다는 이정유 대표의 꿈은 언제 어디서나 현재진행형이다. 그는 김해의 예술과 문화가 활짝 피어 날 수 있도록 김해의 연극인으로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 꽃을 피우는 마지막 조건이 바로 시민 관객이다. 이 대표는 늘 이렇게 말한다. “연극을 보는 관객의 마음이 연극을 완성하는 겁니다.”

박현주
박현주 북칼럼니스트 작성일. 2020. 01.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