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순의 나이가 될 때까지 매년 개인전을 열겠다.” 이 다짐은 이갑임 작가가 6년 전부터 실천하고 있는 자신과의 약속이다. 행복하기 위해서는 늘 연습이 필요하다고 믿는 그녀는 매일 행복을 꿈꾸며 작품 및 전시 활동을 위해 붓을 잡는다. 그녀는 중학생 시절부터 40여 년이 흐른 오늘날까지 여전히 그림을 그릴 수 있음에 감사한 마음을 간직하고 있다. 그 덕분인지 이제는 그림이 인생의 친구가 됐다는 그녀를 만나 전시와 그림 이야기를 들어봤다.
거닐어 온 길 위의 풍경을 되돌아보다
이갑임 작가는 최근 <2019 Artist in Gimhae>展의 작가로 선정됐다는 소식에 기쁨을 감출 수 없었다고 한다. “그림은 세월이나 경력으로 점수를 매겨 판단할 수 없고, 보는 이로 하여금 주관적인 시선으로 판단되기 때문에 공식적인 자리에서 인정받기란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몸 담아 살고 있는 도시의 김해문화의전당으로부터 제 작품이 인정받는 일은 대단히 기뻤습니다. 덕분에 1년 동안 행복한 마음으로 전시 준비를 했습니다.”
그녀의 화폭에는 상당수 ‘집’이 그려져 있다. 인간의 여러 감정을 <길 위의 풍경> 시리즈로 표현했다고 하는데, 그 이유를 물었다. “제가 운전을 하지 못해서 자주 걷습니다. 주변의 풍경과 환경에서 저의 감정이 겹치는 부분이 빈번해서 거니는 길에 많은 관심을 두게 됐습니다. 일례로 봉황동의 경우, 오래된 집이 많습니다. 그 집에는 대개 연륜이 쌓인 할머니들이 생활하시는데, 어린 시절의 정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집 안에 사는 사람은 슬픔, 기쁨, 탄생, 죽음 등 많은 것을 두고 떠납니다. 그리고 새로운 사람이 다시 그 자리를 채웁니다. 집은 한결같이 그 자리를 지키면서 모든 사연을 품고 있습니다.”라며 그녀는 그런 감정들을 색깔로 표현하는 것이 자신의 작업 방식이라 말했다. 또 다른 작업 방식으로는 ‘버스’를 탄다고 밝혔다. “비가 오면, 버스타기를 좋아합니다. 모르는 곳을 오가며 스트레스 받기는 싫고, 생각을 정립하기 위해 버스 가장 앞자리에서 자연과 주변 환경을 보고, 때로는 졸기도 합니다.” 그녀에게 이런 과정들은 작품의 일차적인 구상단계인 것이다.
앞서 밝힌 작업 방식은 <2019 Artist in Gimhae>展에 그대로 표현 됐는데, 그중에서도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그린 <외갓집 가는 길>을 이번 전시의 대표작으로 꼽았다. 이윽고 그녀는 고향이었던 경남 창원시 의창구 대산면을 떠올리며 추억과 그리움에 잠겼다. “산이 있었고, 기차를 타고 가야 했던 길인데, 그 길이 참 좋았다는 생각을 합니다. 항상 외갓집 가는 길을 생각하면 부모님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조금 더 좋은 곳에서 전시를 하면 부모님을 모시겠다는 마음을 갖고 있다가 결국 한 번도 전시장에 모시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제 그림에는 항상 사모곡을 함께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녀의 작품 <외갓집 가는 길>이 색채가 강렬한 다른 작품에 비해 차분한 톤으로 표현되어 있는 이유다.
걸어온 미술의 길, 앞으로도 묵묵히 걷겠다
그녀는 중견작가로 접어들면서 연꽃을 그리던 지난 3년의 시간을 떠올리기도 했다. “건강이 좋지 않아 쉴 때였습니다. 예전에 그렸던 연꽃 그림을 발견 했는데, 연꽃에게서 배울 점이 많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잎이 물에 잠기지 않도록 물을 담지 않는 지혜와 태풍이 불어도 부러지지 않는 연꽃대의 유연성을 본받고 싶어 3년의 시간을 연꽃만 그리며, 저 자신을 바로 잡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녀는 앞으로의 작품 활동 계획에는 단정을 짓지 않고, 꾸준히 걷겠다는 말을 전했다. “그림이라는 작업은 끝이 있는 것도 아니고, 길이 보이는 것도 없습니다. 그곳인 것 같다고 믿고 그저 불나방처럼 계속 가야합니다. 묵묵히 할 수 있는 데까지 그리는 것이 저의 작가로서의 소명이자 운명이라고 생각 합니다. 제가 행복하기 위해서 그림을 그리지지만, 제 그림을 본 관객 역시 작품을 통해 공감하고 행복을 느낄 수 있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쑥스러운듯 웃으며 대답하는 그녀의 미소에서 매일 행복을 꿈꾸는 화가의 모습이 묻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