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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 중견 서예가가 들려주는 서예의 현주소와 내일
평생을 김해와 함께, 김해 토박이 서예가 범지 박정식

범지 선생의 ‘대한민국 서예대전 최연소 대상 수상’ 기록은 아직도 깨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그에게 기록은 그저 기록일 뿐, 과거는 아랑곳하지 않고 서예의 길만 묵묵히 걸어가고 있다. 서예를 예술보다는 학문으로 여겨 평생 정진의 길로 삼은 그에게 관심은 오로지 작품 활동.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작품으로 선보이는 그는 서예를 ‘보여주는 언어’라고 말한다. 그는 붓글씨로 사람을 감동시키기 위해 선지 위에 한 획, 한 점마다 혼을 싣는다. 맑은 날이나 비가 오는 날이나 매일 한결같은 마음으로 먹을 가는 그를 범지 서화연구실에서 만났다.

김해 토박이 서예가, 세상을 놀라게 하다

1994년, ‘대한민국 서예대전 최연소(32세) 대상’ 그 명예로운 기록 앞에 주변인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말했다. “상경해서 서실 운영과 작품 활동하셔야죠.” 어느덧 27년이 흐른 지금, 여전히 김해에서 예술혼을 빛내는 그의 나이는 예순에 가까워졌다. “큰상 하나 받았다고, 고향을 떠나버리면 누가 남게 되겠습니까? 요즘은 대중 매체가 많이 발달해서 지역적 제약도 많이 없어지고, 정보도 접하기 쉬워졌으니 꼭 상경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고향이라 마음이 더 편하고, 김해가 가야의 수도였던 만큼 문화적 배경에 많은 서화인이 있어 그들의 발자취가 제게 예술적 자양분이 되기도 했습니다.”

선자의 ‘한산·습득’이라는 시구를 전서로 표현한 작품으로 대한민국 서예 대전 대상의 영예를 안았던 그는 그 영광 뒤에는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서울이 아닌 시골에서 온 어린 작가가 큰상을 받아 주변의 시선도 곱지 않았습니다. 사실 상을 받은 후, 책임감과 부담감으로 약 3년간 슬럼프를 겪어 붓을 들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상은 그 순간에 잠깐 돋보여서 수상했을 뿐, 그 사람 자체를 평가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붓을 들었습니다.”

김해 중견 서예가로 자리하기까지

‘서예’라는 길이 쉽지 않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가 전업으로 붓을 잡게 된 일은 썩 놀라운 일도 아니었다. “초등학생 시절, 지금의 서예 시간처럼 습자시간이 따로 있었습니다. 당시 선생님께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저의 글솜씨를 알아보시고 글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각종 대회에서 상을 받으며 저의 재능을 알게 됐습니다. 처음에는 집세를 내지 못해 형님께 손을 벌린 일이 많았을 만큼 어려웠지만, 서예에 정진하고 싶은 마음을 버릴 수 없었습니다.”

그 결과, 김해시청, 김해천문대, 김해박물관(가야누리), 김해읍성 공진문 등 김해를 대표하는 시설물 곳곳에는 그의 글자가 새겨져 있다. “제 작업 방식은 글씨 하나를 쓰더라도 글이 쓰이는 위치와 장소, 분위기 등 모두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애를 많이 씁니다. 조사와 답사는 물론, 항상 그 작업물을 염두하고 고민합니다. 그리고 실마리가 잡히면 그제야 붓을 듭니다.”

이제는 어엿한 ‘김해 중견 서예가’로 자리매김한 범지 선생은 과거에 안주하지 않고 시대의 흐름에 발맞춰 ‘현대서예’라는 새로운 길을 걷기 시작했다. “시대가 바뀐 만큼, 무작정 전통을 고집하면 많은 어려움을 겪습니다. 한자와 친숙하지 않은 젊은 사람들에게 조금 더 쉽게 접근하기 위해서는 현대적인 회화요소가 작품에 가미돼야 합니다. 주거 형태가 주택에서 아파트로 변하면서 서예 작품이 설 자리는 점점 없어지고 있습니다. 작품의 구성과 형태를 시대가 원하는 방향에 맞게끔 변화하는 노력은 꾸준히 해야 합니다.”

서예의 내일에는 젊은이가 필요하다

지난해 12월, ‘서예진흥법’이 제정되면서 그는 서예의 미래에 대한 관심과 우려 섞인 속마음을 슬며시 내비쳤다. “체감할 수 있는 변화가 나타나기엔 아직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합니다. 서예인의 전시나 지원금, 학생들의 방과후 활동으로 서예 과목 채택 등 이뤄져야 할 부분이 많습니다.” 그중에서도 ‘서예와 젊은 세대의 만남’에 대해 강하게 역설했다. “지금은 서예를 배우러오는 젊은이가 전혀 없습니다. 현재의 서예는 대부분 퇴직한 사람이 찾아 노령화된 사실이 안타깝습니다. 서예 강사가 일주일마다 1, 2회씩 학교를 찾고, 서예 교실이 하나 정도 마련돼서 언제든지 서예를 접할 수 있도록 체계가 갖춰지면 좋겠습니다. 젊은이들이 서예를 배우면 빠른 습득으로 창작의 영역을 넓혀 나가 서예를 더욱 풍요롭게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아쉬움을 뒤로 하며, 김해의 문화예술을 위해 힘쓰고 있는 김해문화재단을 향해 칭찬의 말도 빼놓지 않았다. “현재 생활 반경 곳곳에 문화예술에 힘쓰려는 노력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매년 좋아지는 모습을 긍정적인 시각으로 보고 있습니다.”

글 권혁제 에디터 작성일. 2019. 08.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