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김해문화재단 웹진

search
움직이면서 움직이지 않는 삶에 대한 성찰
조각가 김영원의 작품세계
글.김진엽 미술평론가

김영원(1947~ ) 작가는 김해시 진영읍 출신으로, 문신·김영중·심문섭 등 한국을 대표하는 조각가들을 배출한 경남지역의 전통을 잇고 있는 작가이다. 대중들에게는 익숙한 세종대왕상의 작가로 알려져 있지만, 한국 현대미술에서 김영원의 작업은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1세대 한국 조각가들이 한국 현대미술의 정체성 확보를 위해 치열한 작업을 이어갔다면, 김영원은 그러한 토대에서 한국 조각이 세계에 진출 할 수 있는 초석을 만들었다. 무엇보다 의미 있는 것은 그의 작업이 현재도 진행형이라는 것이다. 원로 작가이자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로서의 입지는 그에게 중요하지 않다. 작업을 통한 ‘인간 존재 탐구’는 작업 초기부터 현재까지 이어져, 계속 새로운 조형으로 우리에게 나타난다. 그래서 김영원의 예술 세계는 조각이라는 장르를 넘어 평면과 입체, 설치 등 미술 전반의 영역으로 폭넓게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김영원의 작업 세계를 이야기할 때 주로 이야기 되는 것이 ‘실존’에 바탕을 둔 인간 존재의 탐구이다. 일단 그의 작업을 대표하는 것은 ‘인체 조각’인데, 이것은 서구 인체 조각이 이상미(理想美)에 중점을 두고 있는 것과 달리, 동양사상을 바탕으로 한 유불선(儒佛仙)의 융합이고, 여기에다 한국적인 미의식을 결합한 독창적인 예술 작업이 김영원의 예술세계인 것이다.

“나는 인체 사실 조각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고자 했다. 그러나 인체 조각은 해부학적인 태생적 한계를 가지고 있다. 이 한계를 벗어나 걸림 없는 자유로운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인체 그 자체의 일부를 ‘사물화’시켜야만 했다.” (‘작가노트’ 중에서)이러한 김영원의 작업의 형성은 시대 상황과도 무관하지 않다. 1970년대 한국 미술계는 추상적인 모더니즘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는데, 사실주의 조각은 한국 미술계에는 일종의 도전이었다.

구태의연한 사실주의 조각이라는 비판, 또 사회적으로도 비판적 리얼리즘의 성격을 가진 양식 때문에 반정부적이라고 탄압을 받기도 하는 등 그의 작업은 많은 난관을 거쳐 탄생하였다. 이러한 내외의 시련을 극복하면서 확립한 김영원의 독특한 조형어법은 시간이 지날수록 많은 조명을 받았고, 오늘날 한국 현대미술을 이끌어가는 미의식을 확립한 작가로 평가받고 있는 것이다.

김영원의 작업 시기는 대략 세 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 먼저 전반기(1970~80년대) 작업은 ‘중력 무중력’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정신이 아닌 신체만이 인간의 본질을 보여줄 수 있다는 생각으로 작품에 집중하였으며, 인간 신체 껍질을 기술적으로 파괴하고 깨어진 파편들을 다시 접합하는 기법으로 부정적이고 분열적인 시대의 인간상을 절묘하게 보여준다.

중반기(1990년대)는 동양의 선(禪)에 심취한 시기로 기공과 명상을 통해 작업의 변화를 추구한다. 이러한 체험을 통해 인체의 형상이 부분적으로 해체되었고, 선(禪) 사상이 작품의 형식과 내용에 접목된다. 작업 방식도 조각 외에 설치, 퍼포먼스 등의 작업이 병행되면서 작업 세계의 스펙트럼이 넓어지는 시기이기도 하다.

후반기(2000년대)의 대표 작업은 ‘그림자의 그림자’다. 인체는 절편처럼 나누어지며 안쪽 면은 편평하게, 바깥쪽 면은 형상으로 처리되고 있다.전체적인 형상은 흡사 동전에 새겨진 초상처럼 보인다. 최소한의 윤곽과 실루엣만으로 이루어진 저(低)부조 형태가 나타나면서 실재감과 비실 재감이 동시에 실현된 듯 독특한 형상이 나타난다. 이러한 방식은 현대인들의 공허한 내면을 폭로하려는 의도로, ‘인체와 그림자’를 화두로 삼으면서 몸에 집중한다. 몸은 실체가 아니라 그림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그림자’를 끌어들임으로써, 혼란스러운 현대인의 삶을 잘 표현하고 있다.

전반적으로 김영원의 작업 세계에서 주목되는 것은 동양사상에 대한 것이다. 특히 ‘선(禪)’에 바탕을 둔 명상을 자신의 작업에 접목한 것은 큰 의미가 있다. 기존 미술에서 형태와 색채 등으로 동양적인 사유를 표현하였다면, 김영원은 작업의 과정과 결과에 그러한 동양적인 사유를 접목함으로써 기존 서구 미술과는 다른 형태와 구조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 외에도 김영원은 한국 조각계의 역사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과거 대학교수로 재직하면서 후학들을 양성하였고 그들 대부분은 현재 한국 조각계의 대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그리고 ‘한국구상조각회’와 한국 조각계의 대규모 발표의 장인 ‘조각페스타’를 조직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한국 조각의 국제화를 위해, 동아시아를 중심으로 전문적인 국제교류전을 꾸준히 개최하였다. 이러한 김영원의 다양한 이력을, 전문 미술관의 설립을 통해 꾸준히 연구하고 발전시켜나 가야 한다. 특히 국제적인 조각가들을 많이 배출한 경남에서 이러한 시도를 하고 있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는 일이다.

작성일. 2023. 08.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