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한 변화에 발맞추어 2022년 국제박물관협회(ICOM)는 프라하 총회에서 박물관·미술관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의결했다. 새롭게 규정한 박물관·미술관의 정의는 총 세 문장으로 되어 있다.1)
➊ 박물관(미술관)은 유·무형 유산을 연구·수집·보존·해석·전시하여 사회에 봉사하는 비영리, 영구기관이다.
➋ 박물관(미술관)은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어 이용하기 쉽고 포용적이어서 다양성과 지속 가능성을 촉진한다.
➌ 박물관(미술관)은 공동체의 참여로 윤리적, 전문적으로 운영하고 소통하며, 교육·향유·성찰지식 공유를 위한 다양한 경험을 제공한다.2)
1974년의 박물관 정의 개정 이후 가장 큰 변화는 두 번째와 세 번째 문장에 들어있다. 공동체는 서비스를 단순히 소비하는 객체가 아니라 적극적인 파트너로서 운영의 공동 주체가 될 수 있다는 내용이다. 특히 두 번째의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어’와 ‘이용하기 쉽고 포용적이어서’라는 말을 생각해 보면 연령, 계층, 장애와 관계없이 자유롭게 접근 가능하고 즐길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고, 포용적이라는 것은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프로그램을 얼마나 잘 운영하는지와 연결된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의 김현경 연구위원에 따르면, 박물관(미술관)에서의 학습에 대한 최근의 몇몇 연구들은 감정적인 경험의 역할을 강조한다. 미술관은 전통적으로 수집품을 전시하는 장소이지만 지식을 연구하고, 존재하는 방법을 배우고,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사회화함으로써 관계를 맺고 기분을 좋게 하는 장소이다. 즉, 지식의 이전(移轉)이 아니라 개인의 정체성을 구축하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이는 미술관이 사람 중심으로 바뀌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3) 사람 중심으로 변하고 있다는 말은 의미심장하다. 미술관에서 소장품이 중요한 것은, 결국 사람들과 공유·공감하기 위한 매개로서 소장품이 중요하기 때문이라는 뜻이 된다.
이러한 변화는 ‘지역사회 속에서 미술관이 공공성을 어떻게 확보 해야 하는가’라는 문제의식으로 이어진다.
문화체육관광부는 <박물관·미술관 진흥 중장기 계획(2019-2023)>에서 박물관·미술관이 나아가야 할 방향으로, 공공성 강화, 전문성 강화, 지속 가능성 확보의 3대 목표를 제시한 바 있다.4) 방향성 중 하나로 ‘공공성’이 공식적으로 등장한 것이다.
동덕여자대학교 양지연 교수는 미술관의 공공성을 좀 더 구체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공공성’의 일반적 개념과 ‘박물관·미술관의 공공성’에 대한 새로운 방향성을 종합해 볼 때, 접근 가능성, 법 제도적 공공성, 공익성, 개방성, 다양성(포용성), 참여적 민주성, 비영리성을 박물관·미술관 공공성의 중요 개념으로 볼 수 있다.” 5) 즉 미술관에서의 공공성 실현은 접근 가능성, 공익성, 개방성, 다양성(포용성), 참여적 민주성, 비영리성 등을 얼마나 잘 구현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이해할 수 있다.
미술관의 공공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교육이다. 미술관 교육은 미술관의 대중화를 목적으로 1960년대 미국을 중심으로 확산하기 시작해 지금은 모든 미술관이 중요하게 생각한다. 공공성에서 교육이 중요해지면서 개념에도 변화가 생겨났다. 전통적인 교육은 사람들에게 전문 지식을 알기 쉽게 전하는 것을 목적으로, 주체(미술관)와 배우는 객체(대중)를 명확히 구분하고 일방적인 전달을 전제하는 ‘교육(Education)’이다. 그런데 최근의 미술관은 객체와 주체를 구분하지 않는 양방향적인 ‘배움(Learning)’을 추구한다. 프로그램 개발과 운영에 전문가뿐만 아니라 공동체가 참여하는 방향으로 변하며, 이는 문화예술 행위를 공동체가 적극적으로 생산하는 ‘문화민주주의’와 일정 부분 연결되는 것이기도 하다.
실제로 해외의 많은 미술관에서는 교육(Education)이라는 단어보다는 학습(Learning)이라는 단어를 선호한다. 예컨대 영국 미들즈브러 현대미술관은 교육 담당 직원을 ‘학습 큐레이터(Learning Curator)’라 칭하면서, 예술가와 주민이 함께 참여하는 공동체 중심의 전시 및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런 사례는 가까운 일본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가나자와 21세기 미술관 역시 교육 담당자를 ‘학습 큐레이터(Learning Curator)’라 칭하고 있으며, 지역사회에서의 역할을 미술관 운영의 최우선 요소로 생각하고 있다. 또한 특정 지역을 기반으로 하지 않더라도 미술관 교육은 쌍방향의 학습(Learning)으로 변화하고 있으며, 이는 뉴욕현대미술관의 교육 카테고리가 학습(Learning)으로 바뀌었다는 것으로도 알 수 있다.
이러한 변화는 전시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2020년 9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은 <모두를 위한 미술관, 개를 위한 미술관>이라는 흥미로운 전시를 열었다. 제목 그대로 반려견이 미술관에 출입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전시였으며 아마도 개를 미술관의 손님으로 맞이한 한국 최초의 전시가 아닐까 싶다. 개를 관람객으로 맞이하는 전시이다 보니 개의 시선과 성향을 고려해야 했고, 그 결과 기존 전시와는 다른 공간이 펼쳐졌다.6)
지극히 인간 중심적인 미술관에 개를 초대함으로써 반려와 타자의 문제를 고민하고 공공성의 확장이 어디까지 가능한지를 실험해 보는 흥미로운 전시였다.
앞으로도 미술관의 이러한 실험은
계속되어 지역사회와의 관계를
보다 밀접하게 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