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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 표현, 당사자 기반으로 다시 모으다
2020 무지개다리사업 ‘말모이’

문화다양성 확산을 위한 무지개다리사업 일환으로 문화다양성을 해치는 차별 및 혐오 표현을 모았던 말모이 프로젝트. 2019년 혐오 표현에 문제의식을 느낀 시민 몇 명이 모여 혐오 표현을 찾고, 대체 표현을 만들었다. 혐오와 차별 의도는 없지만 무심코 사용하는 말이 너무 많았고, 그런 말들이 굳이 쓰이고 있었다. 그 과정을 통해 우리들은 조금씩 변해갔다. 평소에 보던 예능 프로그램, 뉴스 기사 등 미디어가 불편해졌고 사람 간에 대화 속에서 불필요한 무례한 말 혹은 모르고 사용하는 표현들이 귀에 쏙 박혔다. 1년 동안 말모이 경험을 지닌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간에 혐오 표현을 대하는 온도가 달랐기 때문에 문화다양성을 해치는 말 모음집을 발간했다. 그해 많은 관심을 받았고, 문화다양성 우수사례 공모전에서 대상을 수상하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을 받기도 했다.

당사자 기반으로 다시 모으다

뜻밖에 관심으로 모두 얼떨떨했다. 말모이의 성공(?)은 우리 사회에 필요한 문제의식이라는 것, 당위성을 얻은 느낌이었다. 혐오 표현을 대할 때 때로는 당사자였지만 때로는 당사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차별을 받거나 혐오 대상이 되는 당사자 모두를 우리 모임에서 대표할 수 없었다. 그리고 당사자는 아무렇지 않은데 괜히 우리가 예민하게 바라본 건 아닐까 내내 걱정도 했다. 당사자와 만나서 함께 이야기하고 싶었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여 활동했던 것과 달리 2020년에는 그 고민을 해소해보는 활동을 할 수 있었다. 여성, 장애인, 노인, 청소년, 이주민 네트워크를 구성하여 문화다양성을 해치는 말, 혐오 표현을 당사자 기반으로 다시 모았다. 이처럼 당사자의 전달력과 대표성을 가지는 것이 2020년 말모이 활동이다.

서포터즈가 운영진이 되다

2019년 말모이 사업에 참여했던 서포터즈들이 2020년에는 각 당사자 네트워크 진행을 맡았다. 1년 동안 활동하면서 느꼈던 고민을 함께 가져가기 위해서였다. 당사자와 이야기를 나눈 첫 만남부터 미처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차별이나 혐오 표현에 대해 깨달았고, 이 만남의 중요성을 느꼈다. 그리고 문화다양성 가치를 확산하기 위해 청소년 문화다양성 ‘짝꿍’사업과 연계하여 운영진들과 함께 문화 다양성 교육안을 만들었고, 교육안을 가지고 초등학생 및 중학생을 대상으로 수업을 진행했다. 그 과정에서 혐오 표현 카드놀이를 개발했고, 혐오 표현과 관련한 캠페인 영상을 제작했다. 이를 통해 활동가로서 때로는 매개자로서 배우고 성장해나갔다.

말모이 운영진 참여자 이윤재

각자의 차별 사례를 듣고 그때의 감정에 공감하고 그런 일이 생긴 이유를 생각해 보면서 개인과 사회가 갖춰야 하는 태도는 무엇인지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 뜻 깊었다. 2019년 말모이 활동으로 사회 속의 단어를 보는 ‘여러 가지의 시선’의 중요성을 알았다면, 2020년에는 당사자 네트워크 진행을 통해서 단어와 단어 사이를 잇는 사람들과의 ‘소통’의 중요성을 느끼는 시간이었다.

5개 당사자 네트워크

_ 발칙한 XX들(여성 네트워크)
_ 별의별 말을 찾는 사람들(장애인 네트워크)
_ 말모이 품앗이 ; 희망품은 황혼(노인 네트워크)
_ 청소하는 악어새(청소년 네트워크)
_ 다다우리 온앤오프(이주민 네트워크)

여성과 이주민 네트워크는 공개 모집으로 이루어졌다. 그 외 네트워크는 유관기관들에게 협력을 요청했으며 기꺼이 함께해주셨다. 참여한 모든 분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예기치 못한 코로나19로 인해 계획대로 원활하게 진행하지는 못했지만, 우리가 모였음에 그리고 네트워크를 시작했다는 것에 의미가 있었다.

‘발칙한 XX들’은 1989년생부터 2000년생까지 다양한 생각을 가진 여성들이 여성 혐오 표현과 차별 경험을 모았다. 개개인의 불편한 경험이 아니라 여성 대부분이 겪는 경험이었다는 것을 확실하게 느꼈고, 이 이야기들을 기획하여 <여성이 살아온 세상>에 연재했다. 또한 기사 헤드라인에서 성별 강조, 김해시 유흥업소 간판 및 불법 광고물, 광고에서 나타난 여성성적 대상화 등에 대한 문화다양성 인식 조사를 가지고 영상을 제작했다.

발칙한 XX들 참여자 황희주

여성 혐오를 인지하고 그것을 바꿔 나갈 생각이 있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 좋았다. 비수도권 지역에서 이런 모임을 찾기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네트워크에서 대한민국 여성으로 살아온 삶의 생생한 경험담을 통해 여성 차별에 대해 가졌던 의문을 공유했다. 함께한 사람들의 공감을 받았고, 결국 여성 문제 대부분은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 거시적인 문제였다는 것을 알게 된 시간이었다. 여성 혐오나 차별의 이야기들이 지금까지 온라인상에서 이루어졌던 것에 비해, 나이나 환경을 뛰어넘어 함께 웃고 떠들면서 생생하게 얘기할 수 있었던 것은 굉장히 귀중한 경험이었다. 또, 혼자 막연히 머릿속으로만 하던 생각들을 공유하고, 정제된 글의 형태로 표현할 수 있었던 점에서 많은 보람을 느꼈다.

‘별의★ 말을 찾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흔히 장애인을 별별 사람이라고도 한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마치 정상적이고 일반적인 범주에서 벗어난 특이한 존재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각 자의 개성을 가지고 별처럼 빛나는 별별 사람들이 맞다. ‘장애’ 등 문제가 없다고 판단하는 표현에 대해 의구심을 품고 별별 단어를 문화다양성 관점으로 재해석했다. 〈별의별 말을 찾다〉 활동 영상을 통해 이야기를 확인할 수 있다

‘말모이 품앗이’는 평균나이 68세의 희망 품은 황혼 구성원으로 이루어졌다. 이들은 지역 방언에서 낮잡아 이르는 말을 중심으로 차별과 혐오 표현을 모았다. 그리고 노인 문제를 여러 사회문제와 결부하여 이야기했다. 평균 나이 68세가 모으고 생각한 차별과 혐오 표현을 영상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니 치매가?(너 치매니?) #‘외’할머니 말고, ‘할머니’라고 불러줘 #보리문디 #‘남성성’ 따집니까?

‘청소하는 악어새’에서는 청소년을 향한 혐오 표현 또는 청소년이 자주 사용하는 혐오 표현을 중심으로 모았다. 다양한 신조어가 빠르게 생산되고 있었는데 ‘낙태펀치’, ‘지균충(지역균형선발전형 학생)’ 등 무서운 뜻을 가진 혐오 표현이 많았다. 그리고 ‘초딩같다’, ‘○린이’ 등 어린이와 초등학생을 미숙한 존재로 보는 표현 등에 주목했다. 때로는 ‘학생다움’을 강요받기도 했다. 모르고 사용하는 표현에 대해서는 깨닫는 계기가 되었고, 나아가 혐오 표현 줄이기 챌린지를 기획해 추진하기도 했다.

‘다다우리 온앤오프’ ; ‘다’르니까 ‘다’양한 ‘우리’ 평화와 존중을 ON, 차별과 반말은 OFF. 다양한 문화권에서 온 사람들이 모였다. 이주민으로서 느끼는 공통의 차별 경험이 있었기에 각자의 경험을 문화 다양성을 해치는 말 모음집 〈말모이2〉에 담았다.

이처럼 당사자들이 혐오 표현을 모으고, 다양한 방식으로 문화다양성을 해치는 표현 금지에 대해 사회적 합의를 이루고자 공론화하기 위해 노력했다.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에 필수라고 생각한다. 최근 들어 코로나19로 인한 불안과 분노는 사회적 소수자에게 차별과 혐오로 이어지고 있다. 혐오 표현이 더욱 만연해지고 있는 것이다. 사회적 소수자에게만 돌아가는 것일까? 누구나 사회적 소수가 될 수 있다. 나에게로 돌아올 수 있다. 또 다른 사회문제와 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 차별주의자가 아니라면, 몰랐다면 함께 이야기하자. 무심코 한 말이 누군가에게 차별이 될 수 있음을 한 번 더 생각하고 말하는 건 어떨까? 혐오 표현 모으는 건 우리가 했으니까, 혐오 표현 사용하지 않는 건 누가 할래?

작성일. 2021. 02.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