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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다양성 <말모이> 여성 네트워크 ‘발칙한 XX들’
여성이 살아온 세상 속으로

문화다양성 캠페인 ‘말모이’

문화다양성을 해치는 혐오 및 차별 표현을 모았던 문화다양성 서포터즈 ‘말모이’가 올해 초 문화다양성 우수 사례 공모전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작년에는 문화다양성 침해 표현에 관심을 가졌던 시민이 모였다면 올해는 차별의 대상이 되는 당사자 기반의 각 6개 네트워크로 세분화하여 혐오 표현을 모으고, 당사자의 이야기를 담는다. 현재 노인, 청소년, 여성, 장애, 이주민, 공무원이 모여 네트워크 행사가 진행되고 있다. 그중에서도 오늘은 여성 네트워크를 소개하고자 한다. 이는 지난 5월 참여자를 모집했고, 다양한 연령의 여성들이 신청하여 선정되었다.

발칙한 XX들

주 참여 연령층은 90년대생이고, 8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생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사람들이 활동하고 있다. ‘발칙한 XX들’은 모임 이름이다. 그저 문화다양성 캠페인 말모이 여성 네트워크로 불리기 보다는 이들만의 모임 명을 정하고 싶었다. 다양한 후보군이 있었지만 투표를 통해 ‘발칙한 XX들’로 선정됐다. ‘발칙하다’는 하는 짓이나 말이 매우 버릇없고 막되어 괘씸하다는 뜻인데 보통 손윗사람이 손아랫사람에게 하는 말이다.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여자들이 듣는 말이었고, 이를 비꼬는 의도로 ‘발칙한’을 붙였다. 그리고 ‘XX’는 여성을 상징하는 성염색체이자 미디어에서 여성 혐오 욕설인 ‘년’의 단어 선택이 노출될 때 자막에서 XX 처리 되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순한 느낌의 의미도 준비했다. ‘발(발랄하고) 칙(chic 시크)한 XX들(여자들)’

첫 만남, 하나의 공통점

이들은 여성 혐오 표현의 심각성을 느꼈고, 당사자의 이야기를 담기 위해 모였다. 첫 만남부터 차별 등의 공통적인 경험을 공유하며 강한 유대감을 느꼈고, 내적 친목을 다졌다.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위로하고, 분노했다. 대부분 그렇듯 시작은 ‘강남역 여성 혐오 살인 사건’이었다. 그리고 각자 겪은 차별 경험이었지만 ‘여자’라는 이유로 겪어야 했던 비슷한 경험을 떠올리며 공감했다. 그 속에서 여성이 겪는 공통의 경험을 다시 한번 느꼈다. 여성 차별이 있음을, 여성 혐오 표현이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가정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일상에서

가정, 학교, 직장, 그리고 일상. 차별은 곳곳에서 알게 모르게 너무 많았다. Y 씨는 가정에서 ‘피임 실패작’이라는 이야기를 아버지에게 들어왔다. 아들을 출산하기 위해서 어머니는 언니를 낳고, Y 씨를 낳았다. 옛날이야기가 아니다. 그는 지독한 남아 선호 사상으로 여아 낙태가 빈번하던 90년대 초반에 태어났다. 피임 실패작이라는 말을 아이에게 장난처럼 말할 정도로 여성 혐오에 무지한 아빠는 일명 ‘딸딸이 아빠’가 되기 싫었고, 4년 뒤 Y 씨에게 남동생이 생겼다.

이제는 차별이 더욱 교묘해졌다. 유치원도 예외가 아니라고 현장에서 근무하는 J 씨가 말했다. 교묘한 차별을 알 수 있는 것은 만화 영화 <겨울왕국>의 안나와 엘사의 사례였다. 파란 옷을 입고 매력적인 모험을 하며, 왕자님을 기다리진 않지만 크리스토퍼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존재, 가족에 헌신적이고 화장한 여인들이다. 또, J 씨는 요즘 ‘어린이용 화장품’이 걱정이라고 했다. 키즈 카페에 키즈 뷰티 공간이 있고 남아들이 뛰어놀 때 여아들은 화장 연습을 한다. 꾸밈이 전시될수록 강요는 세습되고, 여아들은 어릴 때부터 코르셋을 체화하며 자라난다.

성인이 돼도 달라지는 건 없다. 화장의 여부, 머리 길이 등에 관해 무례한 말을 듣고, 강요받는다. H 씨는 입술 색이 연하면 안 된다는 강박에 매번 다양한 색상의 립스틱을 사용했다. 그러던 어느 날 입술이 간지럽고 붓기 시작했으며 진물이 났다. 접촉성 구순염이었다. 하지만 그때의 H 씨에게는 건강보다 입술 색 내는 것이 더욱 중요했다. K 씨는 기숙사 조식을 먹으러 갔다. 자다 깬 모습의 남자 동기가 있어 인사했더니 돌아오는 말은 “와~ 생얼이네. 누구세요?”였고 주변 남자 동기들도 함께 웃었다. 그 이후로 K 씨는 아침을 먹지 않는 대신 화장을 했고 곤약 젤리를 챙겨 수업에 갔다. 얼마나 많은 여성이 자신의 건강을 해치고 있는가? 직장에서도 무례함은 여전했다. B 씨가 면접을 보러 갔을 때 “남자가 들어오는 줄 알았다”라는 업무와 상관 없는 말을 들어야 했다. 여성이 일상적으로 듣는 이야기지만, 남자 직원이 비비 크림을 바르지 않고, 입술에 색이 없고, 안경을 썼다고 “꾸며라. 남의 눈을 위해 예의를 지켜”라는 말을 들어왔을지 B 씨는 생각했다.

E 씨는 미술을 전공했다. 그러나 해당 전공에서 말하는 ‘청사진’대로 걷는 이는 주변에 없었다. 대부분 미술계를 떠나 다른 곳으로 향했다. 떠난 이들이 입을 모아 했던 공통적인 이야기는 “내가 남자였으면”이었다. 미대라고 한다면 무엇을 떠올리는지 우리에게 물었다. 앞치마를 입고 작업하는 수 많은 여성? 미술 학원만 가도 남성은 찾기 어려웠다. 실제로 그렇다. 미술대학의 여성 비율은 80% 이상이었다. 하지만 대학교에서 그가 놀랐던 건 학생이 대부분 여자인데 교수는 모두 남자라는 사실이다. 그 많던 미술 대학 여자들은 어디로 갔을까?

일상에서 숨 쉬듯 여성 혐오가 이어진다. 다양한 이야기를 했고, 입에 담지 못할 여성 혐오 표현이 많았다. 가장 대표적인 여성 혐오 표현인 ‘김치녀’가 떠오른다고 또 다른 K 씨는 말했다. ‘김치녀’, ‘된장녀’의 기준가는 얼마일까? 그의 생일에 한 남성이 축하 인사를 전해왔고 시간이 나면 밥이나 먹자고 전해왔다. 그래서 떡볶이를 사달라고 했더니 “너 김치녀야?”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는 의문을 가졌다. “같이 밥을 먹고 싶어 하는 건 상대방이었고, 나는 생일자이지만 밥값은 더치페이하자는 말이었을까?” 혹은 “1인분 기준의 3,500원인 떡볶이의 계산을 부담시킨 것이 원인이었을까?” 그러자 다른 H 씨도 남자 동기와 길을 걷다가 교내 음료수 자판기가 있어서 사달라고 했더니 “김치녀냐?”라고 들었다고 했다. 그저 떡볶이, 음료수 한 캔에 김치녀, 된장녀라고 생각하는 뇌는 어떤 구조일까? 그 지독한 프레임에 갇힌 건 누구일까?

이처럼 일상에 스며든 차별과 혐오에서 표현이 만들어지고, 누군가로부터 발화된다. 누군가 차별이 있다고 말할 때 “요즘 세상에 그런 게 어디 있어?”라고 말하기 전에 여성이 살아온 세상 속 이야기를 통해 한번 더 생각하고 말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누구도 차별받지 않는 세상 속에서 살기를 꿈꾼다.

글 조가현 (재)김해문화재단 문화진흥팀 작성일. 2020. 10.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