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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특화지역조성 사업 <김해가야G> 예비사업 ‘철학반찬’
물음표를 안고 와 느낌표를 갖고 가다

철학반찬이란 소셜 미디어 시대에 등장한 새로운 소통 방식인 소셜 다이닝(Social Dining)과 집단 철학토론인 철학카페를 더한 ‘철학 다이닝(Philosophy Dining)’이다. 저녁밥을 사이에 두고 밥, 집, 옷, 잠, 여행 등을 주제로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자리로 지난해 1월부터 부산 광안리에서 한 달에 한 번씩 총 열한 번의 토론을 진행해왔다. 참가자들은 서로 잘 알지는 못하지만 한 가지 주제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주고받고, 설득과 수용을 거치며 단순한 생각들이 비판적 사고로 이어지는 과정을 겪는다. 처음의 어색했던 분위기와는 다르게 참가자들로부터 ‘각자가 지닌 물음표가 느낌표로 바뀌는 경험’이라는 좋은 호응을 얻었고, 이 기세가 끊이지 않길 바라던 찰나 (재)김해문화재단을 만나 김해에서 철학반찬을 이어나갈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재)김해문화재단과는 지난해 문화특화지역조성 사업 중 하나인 <김해가야G>의 예비사업으로 선정된 것을 인연으로 미래하우스(구 김해한옥체험관)에서 12월 16일부터 올해 1월 28일까지 총 4회에 걸쳐 진행하게 되었다.

1회차는 제육덮밥, 된장국과 함께 ‘음식’을 주제로 가볍게 시작했다. 2회차의 주제는 ‘놀이’로, 주제와 어울리는 분식인 궁중떡볶이, 어묵탕과 함께했다. 3회차는 새해를 맞아 떡국을 먹으며 ‘시간’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고, 마지막 4회차에는 닭갈비를 먹으며 ‘행복’을 논했다. 저녁 7시부터 2시간 가량 진행되는 이 프로그램은 진행자가 만든 밥을 먹으며 주제에 대해 대화 하는 프로그램이지만 3가지 규칙이 있다.

첫 번째 규칙은 본인의 이름과 나이, 직업과 성별 등 사회에서 ‘나’라고 불릴 수 있는 것들을 말하지 않고 묻지도 않는 것이다. 이를 ‘인지의 장막’이라고 부르는데, 인지의 장막 속에서는 모두가 똑같이 합리적이고 비슷한 처지에 있기 때문에 누구나 동일한 논의를 수긍할 수 있다. 상대방은 참가자 자신이 정한 별칭으로만 부를 수 있다.

두 번째 규칙은 나와 다른 상대방의 주장에 대해 욕설이나 강한 비방을 하지 않는 것이다. 모두가 동등 한 위치에 있어야 하고 도덕적 인격으로서 평등한 대우를 받아야 정의로운 합의가 생겨나기 때문이다.

세 번째 규칙은 철학이라고 하여 철학자의 말이나 철학적 용어에 의존하지 않고 쉬운 말을 사용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철학적 지식을 잘 소화하는 사람들에게만 말할 기회가 돌아가고, 그런 분위기 속에서는 편안하고 자유롭게 자신을 이야기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회차당 10~15명 정도가 철학반찬에 참가하였으며, 많은 이들이 자신의 철학을 자유롭게 펼쳤다. 1회차의 ‘음식’에서는 각자가 생각하는 패스트푸드가 무엇인지, 무슨 음식을 좋아하는지와 자신의 음식 철학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2회차의 ‘놀이’에서는 놀이가 무엇인지, 놀이에 대한 조건을 논하였는데, 동물들도 놀이를 한다는 다소 흥미로운 주제에서 놀이를 통해 사회적 지위나 보이지 않는 계층을 느낀다는 이야기까지 이어지기도 했다. 3회차의 ‘시간’에서는 시간을 돈으로 살 수 있는지와 나이를 비례한 시간의 속도, 과거-현재-미래에 대한 시간의 의미에 대해 생각을 나누었다. 4회차의 ‘행복’에서는 행복의 의미와 기쁨과 행복의 차이, 행복과 불행은 어디서 오는가 등 수없이 많은 대화가 오갔다.

다양한 연령층이 모여 하나의 주제에 대한 자신의 철학을 말하고 듣고 또다시 말한다. 분명 눈으로 보기에 참가자들의 나이 차는 꽤나 있어 보이지만 대화하는 데 무리가 없다. 현대사회의 큰 고질병 중 하나인 ‘다른 연령층과의 대화 단절’이 철학반찬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미래하우스라는 장소가 있고 지켜야 하는 세 가지의 규칙이 있으며, 프로그램의 시간에 시작과 끝이 있기에 철학반찬은 하나의 놀이가 된다. 그리고 니체가 추구하는 ‘어린아이’ 같음이 된다. 선입견 없이 세상을 바라보는 순수한 긍정 상태를 뜻하며,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말한다. 발현되기 어려울 것만 같던 니체의 어려운 사상이 여기에서 쉽게 가능했고 놀고 있는 이 순간만큼은 여느 철학자 못지않게 대단하다.

마지막 회차에서 그간의 대화를 정리하며 참가자들에게 철학반찬이 어땠는지 물어보았다. ‘특별한 경험’, ‘맛있는 식사를 대접해 주셔서 감사’, ‘행복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시간’, ‘이런 프로그램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등이 나왔고 참가한 모든 이들이 서로의 이야기를 해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끝으로 마무리되었다.

미래하우스에서 철학반찬을 진행할 수 있었던 것은 크나큰 기회이자 감사한 경험이었다. 찾아가기 좋은 교통편과 예스러움은 도심 속에 핀 무궁화였으며, 우리의 것 안에서, 우리의 말로, 우리 사람들과 음식을 먹으며 대화할 수 있는 ‘우리스러움’은 앞으로도 찾기 힘들 것이라 지레짐작한다. 진행할 수 있게 도와주신 (재)김해문화재단과 미래하우스 담당자 및 행사 관계자분들, 부산에서 시작된 연으로 도움을 자처해 준 강아림 씨와 최한웅 씨, 철학카페를 통해 많은 걸 가르쳐 주신 이진남 교수님과 김재현 교수님, 참석해주신 모든 참가자분들께 허리 숙여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이후에 더 멋지고 더 훌륭한 철학반찬을 김해에서 다시 할 수 있길 바란다.

최재혁
최재혁 철학반찬 기획자

철학과 식품영양학이라는 다소 동떨어져 보이는 두 개의 전공을 가지고 있으며 그 덕에 소셜 다이닝과 철학카페를 결합한 ‘철학반찬’을 기획하였다. 2015년부터 마산과 춘천에서 철학카페 회원과 매니저로 활동하며 철학의 대중화를 위한 다양한 실천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작성일. 2020. 02.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