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김해문화재단 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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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나, 그리고 우리를 생각하는 <문화공존캠프>
첫 번째 캠프 후기

지난 9월 6일(금)과 7일(토), 양일에 걸쳐 미래하우스(김해한옥체험관)에서 ‘공존’을 주제로 첫 번째 <문화공존캠프>를 진행했다. 준비하는 동안 갑자기 태풍 소식이 들려왔다. 바람이 불고 폭우가 쏟아지면서 우리가 계획했던 핵심 프로그램의 내용을 대폭 수정해야만 했다. 대안을 마련하며 공간을 연출하는 동안 참가자들이 도착할 시각이 되었는데 몇 명을 제외하곤 제때 도착하지 않았다. 캠프의 시작 시간이 미뤄졌다. 게다가 다른 큰 행사의 준비가 겹쳐 예술가와 관계자들이 고즈넉한 한옥 주변을 부산하게 돌아다녔다. 우리는 전반적으로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도 대망의 첫 번째 <문화공존캠프>의 문을 열었다. 따지고 보면 어수선함, 돌발 상황, 바람과 태풍 같은 것 만큼 공존과 어울리는 것도 없다. 낯섦과 불편함, 예상치 못했던 존재나 현상과의 만남을 어떻게 대하느냐가 공존을 위한 태도의 핵심이기도 하다.

먼저 도착한 참가자들은 느긋하게 마당을 걷거나 자리에 앉아 팸플릿 따위를 읽으며 후텁지근한 날씨에 눅눅해진 몸을 말리며 쉬었고, 다른 참가자들이 도착하면 시작해도 되겠냐며 양해를 구할 때마다 ‘그기 뭐시라꼬’하는 담대한 표정으로 우리를 안심시켜 주어서 어쩐지 이번 캠프가 좋은 분들과 성공적으로 마무리될 수 있겠다는 흐뭇한 예감이 들었다. 김해에서 마을교사, 문화기획자 등으로 활동하는 분들이 많았고 서로 ‘어? 너도?’하며 인사하는 분들도 있어서 오히려 우리가 푸근한 동네에 초대받은 느낌도 들었다.

김해 봉리단길의 맛집으로 유명한 청년들의 식당 ‘하라식당’에서 주문한 특제 도시락으로 저녁을 먹으며 우리는 각자 자신을 소개할 5장의 사진을 오픈채팅방에 전송했다. 그리고 오후 6시를 조금 넘긴 시각, 파워포인트에 띄운 사진과 함께 자기가 생각하는 공존이란 무엇인지, 더불어 자기는 어떤 사람인지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중간중간 터지는 웃음소리, 아무것도 아닌데 서로를 격려하는 박수 소리를 들으며 우리는 처음 만나는 16명의 참가자에 대해 더 잘 알게 되었고 낯가림과 서먹함을 쉽게 털어낼 수 있었다.

오후 7시가 지나자 주변이 어둑해졌다. 허경미 안무가와 함께 하는 ‘몸 워크숍’은 우선 가부좌를 틀고 자신의 호흡을 점검하는 일부터 시작했다. 세계의 공존을 위해서라도 먼저 자신의 몸과 감각의 공존에 대해 상기하는 것이 중요했다. 실내에서 가볍게 자신의 몸과 감각을 점검하고 응시하는 시간을 가진 다음 몸을 일으켜 촉촉하게 젖은 마당으로 나가 걷고, 멈추며, 움직였다. 그리고 근처 수릉원 쪽 제주의 오름을 닮은 야트막한 동산까지 걸어가 잔디 위에서 어둑해진 하늘을 배경으로 서로 의지해 몸을 움직이며 눕고, 뛰고, 앉았다, 일어서기도 했다. 호흡, 움직임, 자연 그리고 무엇보다 오늘 처음 만난 우리가 그 시간, 그 장소에서 함께 하고 있었다.

한 시간가량 몸 워크숍을 마치고 실내로 돌아오자 오후 8시가 좀 넘은 시각이었다. 우리는 미리 준비해둔 상자 속에서 공존에 관한 키워드를 하나씩 뽑은 다음 그것을 마음에 담아두고 인문특강을 시작했다. 공존과 포용에 관한 짧은 강의의 핵심은 ‘인간은 더 많은 것들과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가며 진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성인’, ‘남성’, ‘일정 수준 이상의 재산’이라는 세 가지 조건을 충족한 사람만 가지고 있던 권리가 나이, 성별, 재산 수준이나 신분에 관계없이 모든 인간의 권리로 확대된 것이 근대의 인권 개념이고, 그 단계를 넘어 이제 우리는 동물권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다. 앞으로는 사물권의 개념까지 얘기하게 될 것이다.

참가자들은 특강 이후 10여 분 정도 전에 뽑아둔 키워드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은 후 자리를 정돈하고 간단한 다과와 맥주를 곁들여 오붓하게 공존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미리 뽑아둔 키워드를 특강에서 나온 이야기와 접목해 짧게 발표하는 시간이었다. 세대나 인종 혹은 성별을 둘러싼 갈등과 혐오, 멸종 위기종과 미세먼지 같은 환경과 생태 이야기, 동성애와 성 소수자 등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가 오갔다. 공식적으로는 밤 10시 30분에 첫날의 일정을 마치고 각자 배정받은 방으로 돌아갔지만 툭툭 떨어지는 빗소리와 함께 밤은 무르익고 어느덧 새벽이 되었지만, 대부분의 참가자는 옹기종기 모여 남은 이야기를 나눴다.

다음 날 아침 식사에 이어 오전 9시부터 시작한 팸 드로잉은 조아 작가가 진행했다. 늘 마주치는 익숙한 사물, 동네, 사람의 풍경 속에서 다른 것을 상상함으로써 또 다른 공존의 가능성을 생각해보는 프로그램이었다. 날씨 때문에 실내에서 진행됐지만 서로의 상상력에 감탄하기도 하고 서로의 얼굴 앞에 비닐판을 대고 깔깔대며 그림을 그리는 등 유쾌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어느덧 자리를 정돈하고 모두 모여 작별 인사를 나누는 시간이 됐다. 여행이나 캠프의 성격상 평소보다 시간이 압축적으로 흐른다. 그래서 더욱 만났던 사람이나 경험했던 일들이 진하게 각인되는 법이지만, 이번 캠프는 더욱 특별했던 것 같다. 불과 20여 시간을 함께 했지만, 공존이란 키워드에 대한 모두의 공감, 서로의 속내를 나누고 헤어질 무렵에는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낸 이들과 헤어지는 것 같은 아쉬움이 묻어있었다. 생각해 보면 커뮤니티라는 말의 어원은 ‘공동의 책임’이라는 의미를 지녔다. 여기 모인 우리가 결국은 나이면서 너이고, 너이면서 나이기 때문에 결국 ‘우리’였음을 새삼 깨닫는 시간이었다. <문화공존캠프>는 오는 10월 18일(금)과 19일(토), 11월 8일(금)과 9일(토) 에도 이어진다. 또 어떤 분들과 함께 새로운 인연을 맺고 감성 가득한 시간을 갖게 될지 기대된다

작성일. 2019. 09.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