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 : 일곱 개의 달이 뜨다〉는 ‘달’을 작품의 주요 모티브로 차용한 동시대 예술가 일곱 명의 시각을 소개하는 전시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우주탐험이 가능해지면서 인류의 도달할 수 없는 꿈과 무한한 상상의 대상이었던 ‘달’은 그 풍부한 상징적 가치를 잃어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은 여전히 소원을 비는 대상이자, 수많은 예술가들의 작품소재이며, 예술적 영감의 원천이기도 하다. 김환기 화백은 ‘내 예술의 모든 것은 백자 달항아리에서 나왔다’고 말할 정도로 달항아리를 사랑하였으며, 고향 앞바다를 닮은 푸른빛 배경에 달항아리를 그려 ‘그리움’의 감정을 표현하였다.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은 장르는 다르지만 ‘달’이라는 아날로그적 정서와 풍부한 상상의 소재라는 공통된 양상을 다양한 매체를 통해 선보인다. 이번 호에서는 직접 전시장을 오지 못하거나, 방문 전에 미리 작품에 대해 알고 싶은 분들을 위하여 지면을 통해 작품들을 자세히 소개고자 한다. 예술가들의 창조적인 작품을 통해 마음에 품고 있었던 그리운 달 하나를 찾아 가슴깊이 담아가길 바란다.
INFO
기간 2021. 3. 26.(금)~11. 28.(일)
장소 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 돔하우스 전관
관람시간 10:00~18:00(월요일 휴관)
참여작가 김영원, 안규철, 이강효, 연봉상, 최단미, 한호, 허강
규모 조각, 설치, 도자, 한국화, 영상 등 170여 점
관람료 성인 2,000원 / 청소년 1,000원 / 어린이 500원
문의 055-340-7000
분청으로 해체, 재조합한 새로운 산수화
이강효 작가는 분청 기법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과 일명 ‘분청액션페인팅’으로도 불리는 ‘분청 퍼포먼스’로 세계적으로 주목받아 온 예술가다. 〈달산수〉는 2020년 4월부터 약 3개월간 세라믹창작센터에 머물면서 제작하여 새롭게 선보이는 것이며, 달항아리 외 32점의 대형 도자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분청의 자유분방함과 고유색을 자신만의 예술로 승화시켜온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자신이 축적해온 제작방식만을 고집하지 않고 소성과정에서 발생하는 파편화된 작품 조각들을 해체, 재조합하여 독특한 질감의 산수 작품을 새롭게 시도하였다. 산과 둥근 달 형태의 도자기를 유기적 관계에 놓이도록 배치하여 마치 병풍 속 산수화가 입체적으로 실재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관람자의 시선과 위치, 자연채광의 방향에 따라 다양한 풍경이 연출된다.
현실의 벽에 좌절하는 젊은 세대들을 위로하다
예술을 자기를 성찰하고 각성하는 하나의 구도의 과정이라고 정의하는 김영원은 인체라는 형상의 일관된 소재를 통해 시대의 흐름에 휩쓸리지 않고 묵묵히 자신만의 작업세계를 구축해온 한국 구상조각계의 거목이다.
이번 전시에서 소개되는 〈중력·무중력〉은 작가의 초기 작품으로 현실과 이상을 중력과 무중력에 빗대어 표현하였다. 청년시절 작가의 고뇌와 좌절을 고백하는 동시에, 현실의 벽에서 어려운 시기를 겪는 젊은 세대를 위로하고 스스로의 힘으로 극복해 나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누구나 좌절의 순간 나약한 나를 마주해 본 개인적 경험이 있을 것이다. 내가 해결할 수 없을 것 같은 현실이 보이지 않는 중력의 힘으로 존재하지만, 이를 극복할 수 있는 희망을 무중력인달을 통해 은유한다.
빛과 미디어가 만나 우주를 창조하다
빛을 소재로 세계적인 무대에서 활동해온 미디어 아티스트 한호의 〈영원한 빛 - 천지창조〉다. ‘영원한 빛’은 인간과 자연에 생명을 불어넣는 원천으로, 작가는 특히 달빛이 인간에게 선사하는 희망이나 카타르시스적 요소에 주목한다.
작품은 작가 특유의 회화적인 감각과 빛의 결합, 미디어기술이 융합되어 공간 전체가 빛 그림으로 채워지는 형태이며, 관객 참여형으로 완성되는 미디어아트다. 천천히 공간을 관찰하다보면 빛과 그림자의 원리에 의해 천장에 매달린 공이 천천히 움직이며 빛을 발산한다. 이 빛의 공간 속에 머문 관람객의 움직임, 각자의 경험과 새로운 상상이 더해져 완벽한 작품을 연출하게 된다. 작가는 자신이 상상한 어둠 속 빛의 공간을 제공할 뿐, 새로운 창조는 보는 이의 몫이다.
새로운 관점으로 제시하는 ‘달을 그리는 법’
안규철은 삶과 예술에 대한 깊은 성찰을 통해 우리 삶의 부조리와 모순적인 면을 표현해온 작가로, 실체가 없는 것, 눈에 보이지 않는 것, 세상에서 잊어버리거나 외면해온 이미지와 사물을 통해 자신의 생각과 고민, 관객을 향한 질문들을 작품에 담아왔다.
‘달을 그리는 법 Ⅲ’은 2014년 백남준 아트센터에서 개최한 〈달의 변주곡〉 전시에 설치했던 작업을 새롭게 복원한 것이다. “달은 가장 오래된 TV”라고 정의한 세계적인 거장 백남준 작가를 오마주한 것으로, 조명과 거울이라는 단순한 장치를 이용하여 달을 재현했다. 작품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는 서로 다른 수많은 의미의 달을 불러내는 신호가 되기도 하고, 달을 재현하는 일반적인 방식과 관념을 넘어서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보기를 제안한다.
그리움이라는 결핍을 채우는 달
최단미 작가는 지난 6년간 지속적으로 ‘달’을 소재로 작업해왔다. 자신이 느끼는 ‘그리움’이라는 결핍의 정서가 달을 그리는 계기가 되었고, 그림을 통해 결핍의 정서를 채워가고 있다. 최근작 〈소망의 탑〉에 그려진 달은 물리적 거리가 느껴지는 곳의 배경으로 존재하며, 달 아래 공기를 담아 쌓아올린 비닐봉지 탑은 시각적으로는 결국 비어 있음을 보여준다. 달이 내어준 공간에서 수많은 나비가 날아간다. 나비의 날갯짓은 달을 향하지만 달에 다다르지 못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 모습은 결국 아무것도 가지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과도 닮아 있고 그런 우리 삶 속에 늘 이상향으로 달이 존재한다. 작가는 만월을 바라보며 힘들었던 시기에 위로받은 자신처럼 평범한 보통의 일상을 그리워하는 많은 분들에게 작은 위로의 시간을 선물하고자 한다.
달 표면과 같은 질감을 지닌 달항아리아리
연봉상 작가는 독특한 질감의 도자 표현과 회화적인 색감이 짙은 ‘토하기법’으로 자신만의 창작세계를 구축해왔다. 토하는 흙으로 꽃을 피운다는 뜻을 가진 작가의 호이며, 토하기법은 달의 표면과도 같은 질감과 신비감을 더하는 색의 깊이를 표현하기 위한 작가 고유의 제작기법으로, 20년간 그가 개발한 유약 데이터가 축적된 결과다.
이번 전시에서는 연봉상 작가의 ‘우주’ 시리즈를 총망라한 것으로 달과 우주를 상징하는 기(器) 형태의 신작과 달항아리를 선보인다. 전통적인 매끈한 질감의 달항아리를 거부하고 실제 달 표면과 흡사한 항아리와 지구를 닮은 항아리, 별똥별, 은하계 등 작가 특유의 기법과 질감으로 빚어낸 우주 공간을 표현 한다. 흙과 불, 작가의 예술혼이 만들어낸 형언할 수 없는 아름다운 색채의 향연이 펼쳐진다.
한 편의 시를 마주하듯 달의 정서를 소환하다
허강은 ‘자연’, ‘달’을 소재로 입체와 설치, 영상작업 그리고 퍼포먼스에 이르기까지 예술장르의 경계를 허물며, 작품의 스펙트럼을 넓혀온 예술가다. 이번 전시에서는 현대인들이 잊고 있는 달의 서정성을 환기시키는 ‘달빛 드로잉’을 선보인다.
만천명월이라는 명제로 강 위에 쪽배를 띄워 달을 싣고 유영하는 퍼포먼스 장면을 영상과 함께 전시장에 재현하였다. 인간이 우주선을 개발하여 탐사하기 전, 달은 신화와 끊임없는 전설을 부여해주는 유토피아였다. 작가는 쪽배 위의 달, 달을 바라보는 토끼를 배치하여 달 탐사 이전의 정서를 소환한다. 편집된 영상은 전시장을 벗어나 실제 자연과 마주하고, 자연과 예술의 조화를 실천하는 시적 장면을 연출한다. 마지막으로, 애니메이션 기법으로 달의 변화과정을 담은 영상은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는 우리의 삶과 오버랩 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