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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에 대응하는 세라믹창작센터 입주 작가 기획전 <오래된 미래>
세라믹창작센터에서 코로나19 사태를 함께 겪은 생존자들과의 기록

<오래된 미래>는 지난 3월부터 5월까지 세라믹창작센터에서 코로나19 사태를 함께 겪은 생존자들을 필두로 한 전시의 제목이며, 김해의 역사문화도시 추진 사업의 주제이기도 하다. 또,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가 1970년대 인도의 북쪽 라다크에 살면서 전통을 기반으로 한 지역 공동체가 서구 자본주의에 의해 파괴되어 가는 현장을 목격하며 쓴 책의 제목이기도 하다.
왜 <오래된 미래>가 이처럼 화두가 되었을까?

코로나19 사태와 작가들의 대응

코로나19 팬데믹은 전 세계적으로 지역과 도시, 국가의 봉쇄를 초래하였고, 항공과 해상은 물론 전방위적으로 물자와 사람의 이동 제한을 야기했다. 공공장소에서의 집회, 공연, 전시, 축제 등의 행사는 연이어 취소되고 있으며 비대면 사회로의 이행을 촉구하고 있다.

필자는 지난 3월 세라믹창작센터에 입주한 작가들에게 안타까운 소식을 전해야 했다. 전 세계적인 코로나19 팬데믹 사태로 정부와 지자체의 방침에 따라 (재)김해문화재단도 ‘사회적 거리두기’에 협력하여 재단과 미술관의 행사 대부분이 취소되거나 연기되었기에 입주 작가들에게 제공해야 할 프로그램 역시 상당수가 취소될 것이라는 안타까운 소식을 전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따른 재단 및 미술관의 운영 예산 삭감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이 같은 소식에 입주 작가들은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예술의 역할과 의미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고 예술인 지원 사업 등을 적극적으로 알아보며 서로 연대하기 시작했다. 서울에 주소를 둔 작가는 수도권에서 진행하는 공모 사업을 입주 작가들과 함께 준비하였고, 지역에 연고를 가지고 있는 작가는 취소된 입주 작가 전시를 개최할 만한 전시 공간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작가들은 매주 수차례 회의를 하며 코로나19로 발생한 이 사태(전시 취소)를 함께 해결하기 위한 다각도의 노력을 기울였다. 코로나19는 세라믹창작센터에 살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대면의 빈도를 높였고 공통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더욱 긴밀히 협력하는 관계가 되어갔다.

입주 작가들과 스태프들은 김해와 창원, 부산 등에 전시 공간을 알아보았고 마침 한림의 한 공장을 작업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는 장소를 발견했다. 몇 군데의 답사를 통해 최종적으로 김해시 한림면의 공장 지대에 있는 SPACE 사랑농장1)으로 최종 전시 공간을 결정했다. SPACE 사랑농장은 작년 봉하 창작 레지던시에 참여한 김도영, 송성진 작가와 이들의 지인인 이창운, 이창진 작가를 포함한 4명의 작가가 빈 공장을 임대하여 작업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는 곳이다. 전시 공간을 찾고 있는 입주 작가들에게 SPACE 사랑농장 운영진(작가)들이 흔쾌히 전시 공간으로 내주었기에 이번 전시가 성사될 수 있었다.

입주 작가들은 전시에 참여할 구성원을 지난 3월부터 5월까지 세라믹창작센터에서 동고동락하며 코로나19 사태를 함께 겪은 전원으로 결정하였다. 여기에는 비지팅 아티스트로 참여한 이강효 작가와 그의 작업을 도왔던 어시스턴트 2명과 기존 입주 작가 8명과 이들 모두의 생활 및 창작 활동을 지원했던 2명의 테크니션까지 포함됐다. 이렇게 학부 3학년 및 4학년과 세라믹창작센터 스태프 2명과 입주 작가 8명, 초청 작가 1명까지, 총 13명의 전시 참여 작가가 결정됐다. 이런 조합이 그동안 국내 전시에 있었을까 싶은 구성이다.
입주 작가들은 매주 회의를 통해 전시 준비와 관련하여 운송 및 설치 담당, 전시 홍보 담당, 포스터 및 엽서 등 웹 디자인과 인쇄물 담당, 작품사진 촬영 당담, 오프닝 행사 담당 등 체계적으로 업무를 분담하였다. 입주 작가인 레나 쿠도(일본)는 비자 문제로 5월 말부터 일본에 가야 했기에 레나의 빈자리를 입주 작가들과 스태프들이 서로 도와가며 전시를 준비하였다. 그리고 지난 6월 26일(금), 수많은 사람의 응원 속에 입주 작가들이 기획한 전시가 성공적으로 오픈됐다.   

1) SPACE 사랑농장은 김도영, 송성진, 이창운, 이창진 4명의 작가가 김해시 한림면 신천리 공장 단지의 빈 공장을 임대하여 만든 작업 공간이다. 올해부터 작업 공간의 역할 뿐 아니라 전시 공간으로서의 기능을 추가하였으며, 운영진들이 기획한 첫 번째 전시로 <파동-행동유도> 전시를 개최하였다. 두 번째 전시로 입주 작가들이 제안한 전시가 개최 되었으며, 현재 연말까지 몇 개의 전시가 예약되어 있는 상황이다. 김도영 작가에 의하면 지역의 대안 공간으로서 비제도권에서 활동하고 있는 예술가들에게 작품 발표의 기회를 제공하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한다.


<오래된 미래>

<오래된 미래> 전시는 이렇게 모든 사람의 협동으로 만들어졌다. 그들은 비대면 사회 분위기에서 코로나19로 더욱 돈독한 대면으로의 순행(현시점에서는 사회적으로 역행일지 모르겠으나 인류의 역사에서는 순행으로 보았다.)을 보여주었다. 작은 공동체의 힘은 구성원 모두가 서로를 더 잘 이해 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각자가 가진 장점을 십분 활용하여 역할을 분담했을 때 공공 기관보다 더 나은 결과를 도출할 수 있다는 점을 확인한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예산이 한 푼도 없는 상황에서, 만약 이 전시를 공공 기관의 직원이 나서서 진행했다면 과연 이런 과정과 결과를 낼 수 있었을지는 의문이다. 필자는 작가들의 전시 준비 과정을 보며 ‘지시’나 ‘요구’에 의한 것이 아닌 구성원들의 자발적 참여야말로 효율적인 생산을 이루어 낸다는 당연한 사실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은 그 어느 때보다 더욱 긴밀한 협동심과 이타적인 모습을 보여 주었다. 전통 사회에서 공동체 구성원들이 서로의 협력으로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듯이 말이다. 품앗이나 두레와 같은 전통은 위의 사례처럼 오늘 같은 시대에 복잡한 사회 문제를 해결할 훌륭한 대안이 될 수 있다.

입주 작가들이 전시 제목을 <오래된 미래>라고 지은 것은, 서로의 생존을 위해 ‘인간 중심에 가치를 두며 지역의 자원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사용해 수천 년을 공존해온 라다크의 오래된 전통 사회에서 인류의 미래를 찾을 수 있다’는 헬레나의 생각을 입주 작가들 역시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며 공감했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를 준비하는 과정이 작은 공동체의 힘을 재발견하는, 즉 공동체의 힘을 몸소 깨닫는 과정이었기에 공감이 가능했을 것이다. 전시에는 부제가 붙었다. ‘조우’라는 부제목이 들어간 것은 세라믹창작센터에서 함께 조우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반영한 것이다. 여러 가지 이유로 세라믹창작센터에서 함께 살게 된 그들은 공통의 목표를 위해 평화적이고 민주적으로, 또 모든 상황을 이해하고 접근하며 해결해 나가는 방식 속에서 필연적으로 자주 대면할 수밖에 없었다.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공용스튜디오를 사용하는 그들에게는 매일 얼굴을 마주칠 수밖에 없었고 외부의 활동에 대해 조심하며 서로를 배려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졌다. 또한 스튜디오 내에서의 작품 이동과 재임, 내임, 소성, 운송, 설치의 전 과정은 비대면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즉, 전시에 참여한 구성원들에게는 창작 활동과 전시 준비의 모든 과정이 헬레나의 ‘오래된 미래’를 이해하는 하나의 여정이었다고 볼 수 있다.

지역 그리고 작은 공동체

코로나19는 물류 이동과 경제 활동을 위축시켰고 그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생존의 위협을 받는 상황을 초래하였다. 전례 없이 실직자들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사회는 불안해지고 인종 차별은 심각해지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사태에서 보듯 사람들의 이기적인 모습, 약탈, 인종 차별, 식료품의 사재기, 도시의 봉쇄 등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필자는 입주 작가들의 코로나19 대응 과정과 헬레나의 라다크에서의 경험이 주는 제안에서 전통을 기반으로 한 지역 공동체가 우리가 당면한 문제들을 해결할 대안이 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많은 사람이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말하며 비대면 사회가 도래할 것이라 예견하지만, 오히려 대면의 가치를 깨닫고 대면이 더욱 중요한 시대가 오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지역의 환경, 사람, 자원, 전통의 가치 등의 효율적인 활용, 그리고 작은 공동체 간의 연대가 코로나19와 같은 재난으로부터 우리가 공존할 수 있는 훌륭한 해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입주 작가들의 전시 준비 과정에서 보았듯이 말이다.

작성일. 2020. 07.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