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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들의 현실을 그린 <오백에 삼십>
함께 살아가는 삶의 공간, 집

일시 2020.07.04.(토) 15:00, 19:00 / 07.05.(일) 14:00, 18:00
장소 김해서부문화센터 하늬홀 연령 8세 이상 관람가
좌석 전석 30,000원
할인 김해 시민(동반 1인), 장애인, 국가유공자, 군인, 마지막 공연 50% 할인
문의 055-344-1800

‘집’이라는 단어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추위, 더위, 비바람 따위를 막고 그 속에 들어가 살기 위하여 지은 건물, 즉 물리적 공간의 집과 삶의 터전이라 부를 수 있는 사회·심리적 공간의 집이다. 애초에 이 두 가지는 분리된 것이 아니었을 텐데, 언젠가부터 우리에게 집은 주거를 위한 건물과 삶의 터전이라는 각기 다른 의미로 읽히기 시작했고, 여기에 ‘집은 곧 재산’이라는 재테크 차원의 의미가 더해지면서 더욱 복잡한 양상을 띠게 되었다.

이번에 김해서부문화센터 무대를 찾아오는 연극 <오백에 삼십>은 집이 곧 삶의 척도이자 계급의 기준이 되어버린 이 시대에 ‘집’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과연 무엇인지 그 의미를 묻는 작품이다.

생계형 코믹 서스펜스 연극 <오백에 삼십>

<오백에 삼십>은 지난 2015년 초연 이후 일명 ‘생계형 코믹 서스펜스 연극’으로 불리며 대학로에서 롱런하는 연극으로 자리 잡았고, 지금도 꾸준한 입소문을 통해 많은 관객의 사랑을 받고 있다. 부모님, 연인 혹은 친구와 함께 극장을 찾는 관객의 연령대 또한 청년부터 중년, 노년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채롭다. 관객층이 다양하다는 것은 그만큼 극의 이야기가 관객들의 보편적인 정서를 다루고 있는 증거라 할 수 있다.

‘보증금 오백에 월세 삼십’을 뜻하는 제목부터 이미 우리 삶에 밀착된 이야기임을 암시하는 이 연극은 제목 그대로 ‘오백에 삼십’짜리 돼지빌라에 사는 인물들의 삶의 풍경을 그린 작품이다. 사실 대학 입학이나 취업 혹은 여러가지 이유로 처음 독립하는 사람들에게 ‘오백에 삼십’은 매우 익숙하면서도 서글픈 용어다. 서울에서 그것도 중심부나 역세권이 아닌 변두리 지역에서 자기 몸 하나 뉠 수 있는 자그마한 방을 구하려는 사람들에게 ‘오백에 삼십’은 가장 기본이 되는 최소 단위의 금액이다. 그 자체로 어떤 삶의 조건을 은유하는 하나의 상징인 것이다. 작품의 배경이 되는 돼지빌라 역시 바로 이러한 최소 단위의 주거 공간에서 오밀조밀 살아가는 소박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한바탕 소동을 통해 드러나는 이웃의 의미

서울 한 변두리 동네에 위치한 돼지빌라. 국적, 직업, 나이 모두 각기 다른 사람들이 모여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일상을 나누며 살아가던 어느 날, 형사가 나타나 의문의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고 전하면서 이야기가 시작 된다. 멀쩡하던 집주인 아줌마가 갑작스레 살해당했다는 소식에 돼지빌라 사람들은 서로를 의심의 눈으로 바라보기 시작하고, 그동안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마음을 나누며 다정하게 지내던 이웃들이 서로를 범인으로 몰아세우며 배신감을 느끼게 된다.

형사가 한 명 한 명 용의자를 취조하는 과정에서 입주민 각자의 사연과 비밀들이 밝혀지고 이는 때로는 통쾌한 웃음을, 때로는 뭉클한 감동을 선사하며 돼지빌라 사람들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의문의 살인 사건이 소재이긴 하지만 이 작품은 ‘코믹 서스펜스’라는 꼬리표가 말해주듯 어둡고 심각한 스릴러라기보다 범인을 찾아내는 과정에서 펼쳐지는 코믹하고 우스꽝스러운 상황들과 가슴 따뜻한 사연, 허를 찌르는 반전이 시종일관 웃음을 선사하는 유쾌한 연극이다.

무엇보다 <오백에 삼십>을 흥미롭게 만드는 것은 각기 다른 색깔을 지닌 캐릭터들의 개성이다. 인상은 험악하지만 마음은 따뜻한 떡볶이 아저씨 ‘허덕’, 베트남에서 왔다가 불같은 사랑에 빠진 ‘흐엉’, 법조인을 꿈꾸지만 번번이 낙방 중인 고시생 ‘배변’, 입에 욕을 달고 사는 덕에 흐엉의 욕 선생님이 되어버린 ‘미쓰 조’ 그리고 어딘지 모르게 어리바리한 형사에 이르기까지. 무언가 부족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정이 가는 평범하고도 일상적인 인물들이 서로 투닥거리며 싸우고, 때로는 따스하게 보듬으며 살아가는 무대 위 모습은 코믹하면서도 활기 넘치는 삶의 풍경을 선보인다.

집이라는 삶의 공간을 함께 살아간다는 점에서 이웃은 가족이나 친구보다 가깝고 중요한 인간관계라 할 수 있다. 치열하고 각박한 서울살이 중에 대부분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른 채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마음을 나누고 서로 보듬을 수 있는 따뜻한 이웃과 함께 살아가는 것은 ‘오백에 삼십’ 같은 금액으로는 결코 환산할 수 없는 삶의 조건이자 소중한 가치이다. 연극 <오백에 삼십>은 코믹 스릴러라는 대중적인 장르를 통해 이러한 이웃의 의미를 새삼 느낄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현대를 살아가는 관객들에게 유의미한 공연이 될 것이다.

김주연
김주연 연극평론가

월간 <객석> 기자로 시작하여, 현재 예술 현장과 이론을 잇는 글쓰기를 하고 있다. 여러 매체에 연극 및 공연에 관한 칼럼을 쓰고 있으며, 대학에서 강의와 드라마투르그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작성일. 2020. 06.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