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금 세상의 모습에 무척 익숙합니다.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도, 자연에 대한 상식적인 배려도 없는 상태까지도 당연하게 여깁니다. 익숙한 것에 대해서는 의문을 갖는 일도 드물고 문제 제기도 어렵습니다. 조금 다른 세상을 위해서는 상상력이 시급하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지금과는 다르게 세상을 재구성하는 상상 말입니다.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신형철│에세이│한겨레출판 | 428p
“타인의 슬픔에 대해 ‘이제는 지겹다’라고 말하는 것은 참혹한 짓이다. 그러니 평생 동안 해야 할 일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슬픔에 대한 공부일 것이다.
”다른 사람의 슬픔(고통)을 오롯이 이해하는 일은 아무리 애써도 불가능한 일일 것입니다. 글쓴이는 그래서 끊임없이 공부가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그 공부를 게을리하는 순간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게 되므로 다른 사람의 슬픔에 대해 공부하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의무라고 말입니다.
세상의 잘못으로 고통을 겪는 사람들의 일이 자주 들려오고, 그에 못지않게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더하는 사람들의 말들도 자주 들립니다. 우리 모두 더욱 치열하게 타인의 슬픔에 대한 공부를 시작해야 할 때입니다.
보이지 않는 건축, 움직이는 도시
승효상│건축│돌베개│224p
“요즘 우리 사회가 이토록 경박하고 몰염치하며, 예의 없는 일들이 곳곳에서 시도 때도 없이 일어나는 이유가 그동안 우리가 만든 어지러운 도시 풍경과 관계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가 건축을 만들지만 그 건축이 다시 우리를 만드는 것과 같이, 도시 또한 우리 사회를 다시 만든다.”
우리 사회에서 크고 웅장한 새것은 늘 가치 있는 것으로 평가되어 왔습니다. 그래서 오래된 건물을 흔적 없이 밀고 그 위에 반듯한 새 건물을 얹는 일을 별다른 비판 없이 계속해 올 수 있었던 것일 테지요. 하지만 오래된 건축물에는 미적 감각과는 별개로 시간의 따스한 손길이 깃들어 있었음을 우리는 조금 늦은 지금에서야 알아가고 있습니다. 크고 웅장한 새것 속에 살아가면서 우리는 왜 자주 알 수 없는 상실감에 시달리는 것일까요. 해질 무렵, 이 책에 소개된 ‘명례성당’에 서서 노을에 물드는 낙동강의 붉은 물결을 바라보면서 그 해답을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공정하다는 착각
마이클 샌델│사회│와이즈베리│420p
“모든 아이에게 학교에서, 작업장에서, 그리고 인생에서 경쟁하는 데 공평한 기회가 주어졌다고 치자. 그러면 정의로운 사회가 이루어진 셈일까? 비록 완벽하게 실현된 능력주의라 해도 정의로운 사회일 수 없는 이유가 있다. 능력주의의 이상은 이동성에 있지 평등에 있지 않음을 주의해야 한다. 능력주의는 부자와 빈자의 차이가 벌어진다고 해서 문제가 있다고 여기지 않는다.”
기회가 공정하다면 그 사회는 정의를 달성한 것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문득 생각해보면, 공정한 기회라는 것이 과연 도달할 수 있는 목표인지 의심스럽고, 또 공정한 경쟁이 가능하다 하더라도 그에 따른 격차를 당연시하는 사회는 바람직한 것인지 의문을 품어봅니다. 남보다 잘살기 위해 끊임없이 경쟁하며 사는 것이 행복한 사회인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보게 됩니다. 능력주의가 우리를 공정하다는 착각 속에 살게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