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는 정말 많은 '타이틀'을 가진 도시다. 당장 떠오르는 것만 나열해 봐도 아동친화도시, 여성친화도시, 책의 도시, 청년친화도시, 박물관 도시, 슬로시티, 유네스코 창의도시까지 벌써 7개다. 또 경남 제2의 도시나 금관가야 발상지, 2024년 제105회 전국체전 개최지와 같은 수식어까지도 포함시킬 수 있겠다. 이처럼 김해는 분야와 연령층, 콘텐츠에 구애받지 않고 다양한 사업을 펼쳐오면서 김해만의 독자적인 도시 브랜드 이미지를 형성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가치가 높은 타이틀을 하나 꼽으라면 단연 '법정 문화도시'가 아닐까 싶다.
김해시는 지난해 1월초,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제2차 법정 문화도시로 지정됐다. 뿐만 아니라 ‘경남 최초’, ‘가야문화권 최초’, ‘역사전통 중심형 최초’의 법정 문화도시라는 3개의 타이틀도 동시에 얻어냈다. 이로 인해 김해시는 그야말로 명실상부한 ‘문화의 도시’로 거듭나게 됐다. 제조업도, 관광업도, 산업도, 체육도, 그 어떤 분야도 아닌, ‘ 문화’를 성장 동력으로 삼는 도시로 인정받았다는 것은 그만큼 김해라는 지역에 무한한 문화력과 시민력이 잠재해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김해가 법정 문화도시 지정에 성공한 것은 나에게도 다행(?)이었다. 문화 소식을 취재할 수 있는 기회가 늘었기 때문이다. 지역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는 문화도시 관련 사업의 현장을 찾는 일이 많아졌고 예술인·기획자 등 문화 관련 종사자들을 만나야 하는 일도 잦아졌다. 그러면서 문화계에 종사하는 사람이 아닌 내가 잘 알지 못하던 현장의 다양한 이야기와 그들의 고민·고충, 불만도 들을 수 있었다. 언젠가는 취재차 한 음악인을 만나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다. 김해에서 음악예술 단체를 운영하는 그는 "인구가 56만 명이나 되는 대도시이자 2년차 법정 문화도시인 김해에 '시립교향악단'(시향·市響)이 아직 없다는 것이 말이 안 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시향 창단의 당위성과 긍정적인 효과, 실제 창단으로 이어질 수 있는 가능성등에 대해서도 자신의 생각을 한참이나 설명했다. 내게는 그의 주장이 꽤 신선한 지적으로 다가왔다. 김해시립청소년교향악단이나 합창단 등은 들어봤어도 시향의 유무에 대해서는 한 번도 자세히 생각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명색이 '문화도시'인데 시향과 같은 상징성 있는 음악예술단체가 없다는 사실이 의아하기도 했다.
현재 김해시는 '김해시립예술단'이라는 이름으로 김해시립합창단, 가야금연주단, 청소년교향악단, 소년소녀합창단을 운영 중이다. 또 김해신포니에타, 김해모던심포니와 같은 사립예술단체도 활발히 활동하며 성인 교향악단이 없는 빈자리를 일정 부분 메꾸고 있다. 자체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제1차, 제2차 법정 문화도시로 지정된 전국의 11개 도시 중 시향이 없는 시(市)는 김해뿐이다. 제1차 법정 문화도시는 부산광역시 영도구, 경북 포항시, 제주 서귀포시, 경기 부천시, 강원 원주시, 충북 청주시, 충남 천안시까지 7곳이다. 모두 시향이 있다. 다만 서귀포시의 경우 명칭이 '제주특별자치도립 서귀포예술단'으로 서귀포관악단과 서귀포합창단을 함께 운영하고 있다. 관리를 도에서 하는 개념이다. 영도구가 속한 부산광역시에는 부산시립교향악단이 있다. 김해시와 함께 제2차 법정 문화도시로 지정된 도시(강원 강릉시, 인천광역시 부평구, 강원 춘천시)들 역시 모두 시향을 보유하고 있다. 전북 완주군의 경우 시(市)가 아닌 군(郡)이라 예외다. 이렇게 보면 완주군을 제외한 제1~2차 문화도시 10곳 중 시향이 없는 지역은 사실상 김해가 유일한 셈이다. 게다가 인구수로만 따지면 김해(56만 명)는 이들 10곳 도시 중청주시(84만 명), 부천시(80만 명), 천안시(65만 명)에 이어 규모가 네 번째다. 부산시와 인천시는 각각 전체 인구가 335만, 294만 명이지만 문화도시로 지정된 곳인 영도구와 부평구는 각 11만, 48만 명이다. 심지어 인구 7만의 경기 과천시도 지난 2012년부터 시향을 운영하고 있다. 김해보다 훨씬 인구가 작은 도시들도 시향을 갖고 있는데, 김해에는 아직까지도 없는 이유가 무엇일까. 시향 창단과 관련한 논의와 실제 창단 시도는 몇 년 전부터 있어 왔다. 그러나 창단을 두고 벌어진 예술인들 간의 이권 다툼, 의견 분열로 번번이 무산됐다고 한다. 현재까지도 관련 예술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시향이 무조건 생겨야한다는 의견이 있는 반면 '시기상조'라는 입장도 많다. 시향이 필요하다는 생각에는 공감하지만 예술인들의 처우개선이나 예술고·예술대 등 교육인프라 확충, 관련 조례 제정 등 먼저 해결해야 할 숙제가 많다는 것이다. 실제로 현재 김해시립청소년교향악단의 경우 김해 출신 단원의 비율이 그리 높지 않다고 한다. 시립예술단과의 공존 여부도 고민해야 할 부분이다. 시립예술단을 모두 유지하는 가운데 교향악단이 생기면 시의 재정적인 부담이나 공연기회·역할중복 등 불필요한 소모가 커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또 기존 예술단 단원들의 처우나 근무환경도 먼저 개선할 필요가 있다. 이처럼 다양한 부분과 의견을 고려해야하는 시향 창단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법정 문화도시'라면 그 명성에 걸맞은, 지역을 대표하는 음악단체는 언젠가 반드시 생겨야만 한다. '시립교향악단이 생겨선 안 된다'고 말하는 예술인은 지금껏 보지 못했다. 시향은 김해 시민들에게 다양한 음악적·문화적 혜택을 폭넓게 제공할 수 있을 것이며 하나의 문화 콘텐츠로써 큰 가치를 가질 것이다. 김해시의 이름으로 타 지역에서 공연을 하면 문화사절단 역할도 해낼 수 있을 것이고, 공연·무대가 없어 지역을 떠나는 청년 예술인들에게도 기회의 장이 될 수 있다. 예산문제가 걸림돌이 된다면, 중소규모로 시향을 창단한 후 점차 덩치를 키워나가면 되지 않을까. 김해시 문화예술과에 문의해본 결과 시에서도 시향 창단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는 답변을 받았다. 다만 아직 구체적인 계획 등은 아무것도 정해진 것이 없지만 말이다. 의지가 있다면 언제까지고 검토만 할 것이 아니라 하루라도 빨리 창단 절차를 추진해야 한다. 오는 2024년 105회 전국체전은 김해에서 열린다. 김해 전국체전에 다른 지역의 시립교향악단을 내세울 수는 없지 않은가. 지금까지는 다양한 이유와 어려움으로 시향 창단이 일부 예술인들의 바람에 그쳤다. 김해가 문화도시도 아니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김해는 그저 그런 중소도시가 아니라 '법정 문화도시'다. 문화로 한 데 모이고, 문화로 성장하고, 문화의 힘으로 뻗어나가는 도시다. 시립교향악단은 문화도시 김해를 대표하는 '얼굴'이 반드시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