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KBS에서 대규모 기획 시리즈 〈키스 더 유니버스〉가 만들어졌다. ‘우리는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는가’라는 존재론적 질문을 창의적인 방식으로 제기하며 인간과 우주와의 경이로운 만남을 다룬 3부작 다큐멘터리다. 해당 다큐멘터리는 현장 취재와 CG, AR, 클래식 공연, 프레젠테이션 등을 융합해 ‘체험형 지식 콘텐츠’의 새로운 전형을 제시했다고 평가됐다.
다큐멘터리에서 흥미로웠던 포인트는 매회 시작과 말미에 대규모 버추얼 월(Virtual wall)과 함께 등장하는 클래식 오케스트라였다. 차세대 클래식 라이징 스타인 지휘자 이규서와 이미 그 실력을 인정받은바 있는 ‘디토 오케스트라’가 함께해 멋진 연주를 선보였다, 게다가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인 증강현실(AR) 그리고 거대한 가상의 미디어인 버추얼 월이 훌륭한 오케스트라 음악과 어우러지니, 마치 우주의 한가운데로 안내되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우리는 흔히 클래식을 세련되고 교양 있으며 서양적인 음악으로 여기지만, 실상은 가장 ‘과거 지향적’인 콘텐츠다. 클래식 연주자들은 몇 백 년 전에 작곡된 음악을 재현하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기울인다. 현시대 연주자들은 과거 작곡가의 의도와 연주경향은 물론이고 그때 당시의 감정과 인간관계는 어떠했는지까지 생각하며 끊임없는 소통을 시도한다.
아날로그로 대표되는 콘텐츠인 클래식과는 반대로, 코로나19로 인해 더욱 가속화되는 4차 산업혁명의 대표적인 미래지향적 콘텐츠가 증강현실(AR)이다. 클래식과 증강현실,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두 콘텐츠의 만남은 놀라운 시너지 효과를 불러왔다. 흔히 다른 범주에 속하는 콘텐츠 간의 만남에는 각자가 더 돋보이기 위한 보이지 않는 전쟁이 있기 마련인데, 이번 다큐멘터리는 달랐다. 분량과 비중의 문제를 막론하고 각각의 가치는 ‘융합’되어 하나의 콘텐츠로 진화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처럼 성공적인 융합 커뮤니케이션을 한다면, 다른 지향점을 지니고 있어도 오히려 상이한 방향성 덕분에 더욱 큰 가치를 발휘할 수 있다. 하지만 융합 콘텐츠는 개별 콘텐츠 창작보다 더욱 다양한 작업을 요하고, 이는 더 많은 시간과 노력, 예산을 필요로 한다. 융합은 ‘1+1=2’의 수식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 분야에서 뜨거운 관심을 가지고 융합을 요구하는 까닭은, 성공했을 때의 가치 또한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클 것으로 예상하기 때문이다.
예술과 기술의 만남은 더 이상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다. 우리 김해에서도 지역 예술인들과 콘텐츠 제작자들이 만날 수 있는 포럼과 컨퍼런스, 워크숍들이 열려 만남의 기회가 잦아졌으면 한다. 그리고 다양한 만남이 곧 수준 높은 융합콘텐츠들을 불러일으키는 마중물이 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해본다.
영어에서 1월을 뜻하는 ‘January’라는 단어 속에는 이중적인 얼굴의 대명사인 Janus(야누스)가 들어있다. 이는 처음과 끝, 전쟁과 평화 그리고 시작과 변화라는 상징을 지니고 있다. 1월은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하는 달일 수도 있지만 지난해의 마지막이었던 12월과의 경계와 맞닿아 있는 달이기도 하다. 과거지향적이면서 동시에 미래지향적인 이 시기를 어떤 방향으로 보내는가에 따라 한 해가 달라질 수 있다. 과거와 미래처럼 서로 다른 것들의 공존을 통해 오늘을 만들어 갈 수 있다는 지혜와 함께 1월을 보낼 수 있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