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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자부심에서 아들의 자신감으로 이어지다.
꺼지지 않는 불꽃, 가야대장간 전병진·전현배 대표
글.김달님 사진.백동민
금관가야의 중심지였던 김해 봉황동 1번지. 이곳에는 40여 년 동안 쇠를 두드리며 길을 닦아온
장인, 전병진 대표가 운영하는 '가야대장간'이 있다. 산업화 이후 수많은 대장간이 문을 닫는
동안에도 전병진 대표는 꿋꿋이 대장장이의 자부심을 지켜왔다. 그러나 이곳이 더 특별한 이유는,
장인의 손길이 아들의 손끝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데 있다. 아버지의 자부심을 이어받은 전현배
대표는 "여전히 대장간이 설 자리가 있다"는 자신감으로, 대장간의 새로운 미래를 열어가고 있다.
이 부자가 함께 이어가는 대장간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의 이야기를 만나본다.

불 앞에서 시작된 장인의 길

대장장이란 불에 달군 쇠를 두드려 농기구와 생활 도구를 만드는 사람이다. 농경 사회에서 호미, 낫, 곡괭이 하나하나가 모두 대장간에서 태어났고, 사람들의 삶은 대장장이의 손끝에서 이어졌다. 산업화 이후 기계화와 함께 값싼 공산품이 등장하며 대장간은 설 자리를 잃었지만, 여전히 불 앞에 서서 망치를 내려치는 장인들이 있다.

전병진 대표도 그 길을 걸어온 사람이다. 그는 중학교 시절, 집안 사정으로 학업을 이어갈 수 없게 되자 아버지의 권유로 부산의 한 대장간에 들어갔다. 열일곱 소년에게 1400도의 불 앞은 혹독한 훈련장이었다. 선풍기 하나 없는 화로 앞에서 땀을 쏟으며 쇠를 달구고, 작은 키로 무겁게 내리치는 망치에 온몸을 실어야 했다. 몸은 고됐지만, 달궈진 쇠가 망치질에 따라 모양을 바꾸는 과정은 놀랍고 즐거웠다. 그렇게 우연히 시작한 일이 결국 평생의 업이 되었다.

전병진 대표 사실 군 제대 후에 정비 쪽으로 일을 바꿔보려고 했었어요. 그런데 그게 잘 안 되더라고요. 그때 제가 생각을 한 거죠. 아, 대장장이가 내 천직이구나.

1994년, 그는 김해 대동면에 자신의 공장 '원농기구'를 차리고 독립했다. 전병진 대표는 처음 자신이 만든 제품을 납품하던 날의 기분을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순간으로 꼽는다. 점차 농기구와 칼을 찾는 이들이 늘어 나는 것을 보며 보람을 느꼈지만, 곧 큰 시련이 닥쳤다. IMF 외환위기와 값싼 중국산 제품의 유입이었다. 많은 대장간이 문을 닫았고, 그 역시 반제품을 사다 가공해 팔라는 유혹을 받았다. 그러나 전 대표는 끝내 타협하지 않았다.

전병진 대표 반제품을 가공하면 당장은 편하죠. 하지만 그 순간 기술도, 설비도, 인력도 다 무너집니다. 저는 제 손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만들고 싶었어요. 그게 대장장이의 자존심이니까요. 그때 제가 그 길을 좇았다면 돈은 벌었을지 모르지만 지금의 저는 없을 겁니다.

그 자존심으로 전병진 대표는 10년이 넘는 고비를 꿋꿋하게 버텼다. 매일같이 불 앞에서 쇠를 두드리며 기술을 지켰고, 그 덕분에 오늘의 '가야대장간'이 남을 수 있었다.

아버지의 손끝에서 아들의 손끝으로

이제는 그의 아들 전현배 대표가 함께하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불꽃 튀는 대장간을 곁에서 지켜본 그는 스무 살이 넘자 자연스레 아버지의 길을 따랐다. 그런 아들의 선택에 전병진 대표는 처음에는 보다 편한 길을 가길 바라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고마운 마음이 더 컸다. 오랫동안 지켜온 기술을 자신의 세대에서 끝내지 않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주인공이 아들이라면 모든 것을 물려줘도 아깝지 않을 것 같았다.

부자는 함께하기 위해 2018년 부산 구포시장에 '가야대장간'이라는 소매점을 열었고, 2023년 6월에는 김해 봉황동 1번지에 새롭게 둥지를 틀었다. 이제는 명함에도 아들 전현배 대표의 이름이 나란히 새겨져 있다.

전현배 대표 막상 뛰어들고 보니 생각보다 더 힘든 점도 많지만, 힘들지 않은 일은 없잖아요. 아버지께서 이 일을 천직이라 여기셨던 것처럼 저도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가야대장간 안에는 호미, 낫, 무쇠솥 등 전병진·전현배 대표가 직접 불에 달군 쇠를 두드려 만든 다양한 제품이 즐비하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자부심을 담은 제품은 단조 칼이다.

전병진 대표 쇳덩어리를 자르면 미세한 공기 구멍들이 있어요. 그런데 불에 달군 쇠를 두드릴수록 그 구멍들이 사라지고 조직이 치밀해져 더 강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철판을 잘라 만든 스테인리스 칼과는 비교할 수 없죠. 칼날은 얇아도 훨씬 단단하거든요.

가야대장간의 단조 칼은 명절이면 주문이 수백 건에 이를 만큼 인기가 높다. 특히 손에 꼭 맞도록 무게와 크기를 조절해 주문 제작할 수 있다는 점은 손님들이 다시 찾는 가장 큰 이유다. 맞춤 제작된 칼은 오래 쓸수록 손에 잘 익어 쓰임새가 깊어지고, 그만큼 만족도 또한 크다.

전현배 대표 손님이 쓰고 나서 다시 찾아오실 때가 많아요. '칼이 이렇게 잘 드는 건 처음이다', '이 칼 아니면 안 된다'는 말씀을 들을 때 정말 큰 보람을 느낍니다. 저희 칼을 한 번도 써보지 않은 분들은 있어도, 한 번만 써본 분들은 없거든요. 과거에 비해 수요가 줄어드는 건 사실이지만, 공급은 더 빨리 줄고 있어요. 기계로 대체할 수 없는 공정이라 반드시 필요한 사람들이 찾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일에 여전히 비전이 있다고 봅니다.

아들은 아버지의 기술을 이어받는 동시에 새로운 시도를 더하고 있다. 스마트스토어 운영, SNS 홍보, 체험 프로그램 등을 도입해 대장간의 문턱을 낮춘 것이다. 덕분에 코로나 시기에도 온라인 판매와 입소문으로 버틸 수 있었고, 체험 프로그램을 찾은 단체 손님들은 대장간에서 직접 칼을 갈아본 뒤 그 자리에서 제품을 구입하기도 했다. 아버지의 손끝에서 아들의 손끝으로 이어지는 기술은 단순히 전통의 보존을 넘어, 오늘도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어가고 있다.

끝없는 길, 이어지는 불씨

전병진 대표는 대장장이 경력 46년 차가 된 지금도 스스로 만든 제품에 만족한 적이 없다고 말한다. 그에게 대장간 일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끝없는 길을 걸어가는 '예술'에 가깝다.

전병진 대표 예술은 끝이 없잖아요. 저에게 이 일도 그래요. 손님들이 만족하는 데서 자부심을 느끼긴 하지만, 매번 '조금 더 잘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아마 제가 이 일을 손에서 놓을 때까지 백 퍼센트 만족하는 순간은 없을 거예요.

그런 그가 아들에게 늘 당부하는 말도 같다.

"초심을 잃지 말아라. 대장장이의 자존심은 소비자가 만족할 때까지 끊임없이 두드리는 데 있다."

아들 전현배 대표는 그 말을 가슴에 새기며 아버지의 세월과 노력이 깃든 가야대장간을 지키기 위한 꿈을 꾼다. 아버지가 은퇴한 이후에 혼자서도 이끌어갈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게 그에겐 지금 가장 중요한 과제다.

전현배 대표 앞으로도 가야대장간 물건은 믿고 쓸 수 있다는 말을 꾸준히 듣고 싶습니다. 저희 제품에 자신 있으니까요. 편하게 방문하셔서 둘러보시고 써보시면 좋겠습니다.

김해 봉리단길에 자리한 가야대장간은 단순한 판매장이 아니다. 봉황동 1번지라는 주소부터 상징적이다. 가야의 옛 숨결이 깃든 봉황대와 맞닿은 길목에서, 아버지가 지켜온 기술과 아들이 꿈꾸는 내일이 함께 담긴 '가야대장간'의 불씨는 꺼지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

가야대장간

  • 경남 김해시 봉황대길 67-101
작성일. 2025. 08.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