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요정이 도착하기 전인 2월, 달콤쌉싸름한 초콜릿을 타고 전해지는 핑크빛 로맨스는 벚꽃이 흩날리는 봄을 더욱 기다려지게 한다. 2월의 대표적 기념일인 밸런타인데이는 소중한 사람에게 초콜릿을 선물하며 서로의 마음을 전하고 확인하는 날이다. 현대의 우리는 밸런타인데이를 기념하며 신분, 나이, 성별, 종교, 인종을 넘어 자유롭게 연인을 만나고 사랑을 키워나간다. 오래전 김해에 존재했던 가야 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사랑을 나눴을까? 1,500여 년 전 황세 장군과 출여의 낭자의 이야기를 보면 어렴풋이 유추할 수 있다. 그들의 애틋한 감정은 지금의 우리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금관가야 제9대 겸지왕이 집권하던 시기, 남대정동에 사는 ‘출 정승’과 북대사동(現대성동)에 사는 ‘황 정승’은 절친한 사이 였다. 그들은 각기 아들을 낳으면 의형제를, 아들과 딸을 낳으면 혼인을 시키기로 약속했다. 이후 황 정승은 아들 ‘세(洗)’를 낳고 출 정승은 딸 ‘여의(如意)’를 낳았다. 출 정승은 세력이 약한 황정승의 집에 딸을 시집보내기 싫어서 아들을 낳았다고 속이고 딸 여의를 남장 시켜 키웠다. 점차 커 가면서 여의의 행동을 수상히 여긴 세가 평소 자주 놀던 개라암(황세바위)에 올라 ‘오줌 멀리 누기 시합’을 제안했다. 여의는 기지를 발휘해 바위 뒤편에 있던 삼대(속이 빈 풀)로 오줌을 누어서 위기를 넘겼지만, 얼마 뒤 무더운 여름날 거북내(해반천)에 멱을 감으러 가자는 세의 제안에 더는 여자란 사실을 숨길 수 없음을 직감하고 강물에 편지를 띄워 사실을 털어놓는다. 서로 호감을 느끼고 있던 둘은 출 정승에게 둘 사이를 고백하고 교제를 허락받아 약혼하게 된다. 행복한 시간도 잠시, 세는 갑작스러운 신라군의 침입으로 전장으로 떠나게 되고, 큰 공을 세워 겸지왕으로부터 ‘하늘 장수’라는 칭호를 얻으며 외동딸인 유민공주와 혼인을 명받게 된다. 약혼자가 있음을 밝혔지만 세는 어명으로 부마가 되고,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본 여의는 크게 실망해 24살의 꽃다운 나이로 요절하고 만다. 부마가 된 세 또한 여의를 잊지 못해 마음의 병으로 그해에 생을 마감하고 세와 결혼을 한 유민공주는 봉황대 서쪽의 임호산으로 출가하여 수도승이 된다. 사람들은 세와 여의의 혼령을 달래 주기 위해 그들이 매일 같이 놀던 개라암에 작은 바위를 얹고 서남쪽의 것은 ‘황세돌’, 동남쪽의 것은 ‘여의돌’이라 불렀다.
황세 장군과 출여의 낭자 이야기는 봉황동 유적지 곳곳에 많은 흔적으로 남아있다. 오줌 누기 시합을 했던 황세바위와 시합을 통해 생겨난 오줌 자국, 약혼하고 처음으로 데이트한 여의좌(如意座), 출여의 낭자의 정절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여의각(如意閣) 등 유적지는 두 사람의 진실한 사랑을 증명하는 듯하다. 어렵게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출 정승의 허락을 받아 약혼까지 했던 그들이 기에 사랑하는 이를 두고 떠나야만 했던 황세 장군과 그런 그를 바라볼 수밖에 없던 출여의 낭자의 사랑 이야기가 더욱 비극적으로 다가온다. 연인이 있다면, 현재의 소중함을 나누기 위해 봉황동 유적지를 방문해 보는 것은 어떨까? 황세 장군과 출여의 낭자의 진실한 사랑 앞에서 서로의 마음을 굳게 다지는 기회를 가지는 것도 따스한 봄날을 더 로맨틱하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