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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여도공 백파선의 궤적 새로 쓰기
백파선 취재기
글.김용락 경남신문 기자 사진.김용락 경남신문 기자

김해 출신으로 추정되는 ‘백파선(1560~1656)’이라는 조선시대 여성이 있다. 백파선은 도자기 전쟁이라고도 불리는 임진왜란·정유재란(1592~1598) 이후 일본으로 납치된 도공이다. 이후 일본 아리타 지역에서 도자기 업을 부흥시키며 ‘아리타 도업의 어머니’라 불리게 된다. 지난 10월 백파선의 궤적을 좇는 기획기사 9편을 경남신문에 보도했다. 기사를 통해 백파선에 대해 잘못 알려진 점들을 바로잡고 도예가를 넘어 여성 리더로서 백파선의 가치를 재정의하고자 했다.

취재 과정 중 가장 흥미로웠던 순간은 상식처럼 여겨졌던 정보가 과장되고 왜곡됐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다. 백파선에 대해 조금이라도 들어봤다면 남편을 '김태도'라 알고 있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수많은 언론과 정보지에 언급돼 왔고, 심지어 백파선을 모델로 한 문근영 주연의 드라마<불의 여신 정이>에도 김태도가 등장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김해 김씨 김태도’는 백파선과 아무런 연관이 없는 인물이다. 지역 사학자들이 김해와 백파선의 연관성을 강조하기 위해 깊은 연구 없이 넘겨짚는 과정에서 탄생한 허구의 인물이다. 일본 아리타에는 후손들이 세운 백파선의 비가 남아 있다. 비의 이름은 '만료묘태도파의비'. 태도는 이 비명에서 따온 것인데 학술적 근거가 없다.

취재를 하면서 '김태도' 이외에도 과장되거나 왜곡된 정보가 많음을 확인했다. 취재는 모든 배경 지식을 지우고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현재 백파선에 대한 출처가 명확한 사료는 딱 두 개가 남아 있다. 앞서 언급한 '만료묘태도파의비'와 백파선 부부를 거느렸던 고토가(家)의 공적을 기록한 <후등(고토)가어전공기>뿐이다. 두 사료를 종합해 백파선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백파선 부부는 임진왜란이 일어나고 어느 해에 고토 이에노부에 의해 일본 사가현의 다케오로 향하게 된다. 이들의 고향은 조선 '심해'. '심해'는 현재의 김해가 가장 유력하지만 아직까지는 어떠한 증거도 발견되지 않았다. 백파선 부부는 다케오의 광복사(절) 앞에 살다가 우치다의 땅을 받아 도자기 생산 일을 시작한다. 백파선의 남편은 '신타로'라는 일본 이름을 썼는데, 그가 생산한 도기는 '신타로야키'라 불렸다. 신타로는 1618년 10월 29일 사망한다. 그의 법명은 천실종전(天室宗傳)이며 조선에서의 이름은 알려진 바 없다.

종전(신타로)이 죽은 이후 아내 백파선은 집에 있는 조선인들과 함께 백토가 산출되는 아리타의 히에코바로 향한다. 이삼평이 아리타의 이즈미산(泉山)에서 백토를 발견했다는 소식을 듣고 몇 년이 지났을 때의 일이다. 히에코바에 정착한 백파선은 그곳에서 도자기 생산을 이어간다. 이후 조선인들이 아리타로 몰려들어 도자기 업이 집중되면서 부흥하게 된다. 훗날 백파선은 '사라야마(아리타 가마터)의 시조'로 불리게 된다. 백파선은 본명이 아니다. 후손들이 지은 애칭으로 '100살을 산 할머니 신선'이란 뜻이다. 본명은 알려진 바 없다.

실제로 백파선의 흔적은 일본 아리타 마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보은사에는 백파선의 비가 여전히 남아 있고 백파선이 아리타에서 처음 열었던 가마인 히에코바 가마터, 백파선 가문과 이삼평 가문이 조선을 그리워하며 세웠다는 설이 있는 관음산 제례묘까지 말이다. 무엇보다 백파선의 존재를 증명하는 흔적은 여전히 아리타에 살고 있는 백파선의 후손들이다. 후손들은 백파선의 고향인 심해(深海, 후카우미)를 성씨로 하고 있다. 아리타에서 만난 후손은 후카우미 야스시 씨와 후카우미 소스케 씨. 이들이 운영하는 가게는 '후카우미 산류도'와 '후카우미 쇼덴'으로 자신의 성이자 선조의 고향인 '심해'를 가게 이름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들 또한 백파선의 역사가 조금 더 분명해지길 바라고 있다.

백파선의 가려진 역사는 학술연구와 발굴조사로 걷어낼 수 있다. 한국에서는 고향으로 추정되는 김해 상동면 감물야촌(조선시대 대규모 요업단지) 일대 발굴조사 과정에서 백파선의 흔적이 발견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전문가들의 시선은 백자 생산이 시작된 시기의 가마터인 '상동 분청자기 가마터'로 향하고 있는데, 김해시는 내년 이곳 가마터의 추가 발굴을 추진할 계획이다. 지명학적으로 '심해'라는 지명의 출처를 밝혀 내는 작업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에서 백파선보다 더 추앙받는 이삼평의 고향은 '금강(金江)'이라 명시돼 있는데, 충청도 금강(錦江)과는 한자가 다르다. 일부 학자들은 김해(金海)가 변형된 것이라 주장하기도 한다. 결국 김해라는 지명이 임진왜란 당시 어떻게 불렸는지에 대한 한국과 일본 양국의 연구가 요구된다.

백파선은 대규모 예술가를 통솔했던 여성 리더였다. 많은 전문가들이 기존 도예가로서의 시선에서 나아가 그가 가진 지도력에 주목하고 있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활발해지고, 올바른 리더의 필요성이 강조되는 오늘날 백파선을 재조명할 가치는 충분하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여성 도예가들은 400년 전 백파선이 했던 것처럼 새로움을 찾고, 사람들을 이끌고 있었다. 훗날 여성들이 중심이 돼 도자기에 대한 다양한 실험과 변화가 이뤄지는 르네상스를 맞이한다면 ‘백파선의 후예들의 시대’라 불러도 부족함이 없을 거라 생각한다.

작성일. 2023. 11.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