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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色의 이글거리는 불꽃 세라믹창작센터 4人을 만나다
신예진 | 정지숙 | 강경미 | 함연주

세라믹창작센터는 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에서 운영하는 국내 유일의 세라믹 전문 창작스튜디오다. 하늘과 구름과 산이 어우러진 그곳에서 예술가 4인이 구슬 땀을 흘리고 있다. 큰 가마는 예술혼으로 이글거리고 그들만의 감성과 철학은 작품으로 익어가고 있다.

계속되는 진화 - 신예진
얼마 전 〈뉴페이스 & 아티스트 인 김해〉展에서 만난 신예진 작가. 해당 전시에서 그는 또 다른 값진 보석을 얻었다. 자연의 뼈대를 표현한 파격적 설치예술을 선보인 동시에 앞으로의 새로운 확장성까지 얻은 것이다. 자연과의 순수 교감이라는 철학적 기조를 유지하면서도 작품을 파격적으로 변신시킬 수 있다는 것에서 그의 천부적 감각과 부단한 노력을 엿볼 수 있다. 그는 또 한 번의 작품 진화를 위해 디지털 기술과 세라믹 기법의 조화를 머릿속에 드로잉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이곳 세라믹창작센터에서 물레를 돌리며 도예의 섬세한 감각을 체득하고 있다. 그의 작품은 합성수지로 만들었지만 도자기처럼 보이는 것이 많다. 어쩌면 작가가 이곳을 찾아온 이유도 그가 표현 하고자 하는 질감의 원형을 만나기 위함이리라. 작업실에서 그가 만들고 있는 작품을 보았다. 수없이 망가뜨리며 실패를 거듭한 끝에 정교하게 자세를 잡은 모습. 그 모습이 이곳에서의 그를 닮아있다.

존재의 자화상 - 정지숙
플루이드 매스(Fluid Mass) 즉 유동적 덩어리는 정지숙 작가의 작품 세계를 함축하는 단어다. 한 생명체는 수많은 세포의 집합체고, 지구도 온갖 생명체와 물질들의 집합체다. 만물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그것들의 존재, 시간, 공간의 경계는 모호하다. 작가의 작품들은 점토로 된 몸체에 조개껍데기, 바다유리알, 비즈, 자갈 등 각지에 흩어져있던 온갖 자잘한 것들이 덧입혀져 한 덩어리가 된 생명체의 형상이다. 그리고 그 자잘한 것들은 누군가의 체온이 닿았던 기억의 파편들이고 생명체를 이루는 세포들이며 지구라는 덩어리 안에서 마치 개미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작가의 시선은 그런 유기적 연결체로서 태어나고 사랑하고 이별하며 죽음으로 다가가는 존재들의 애잔함에 닿아있었다. 그 애잔한 덩어리는 그의 자화상인 것이다. 그런 반면, 요즘 만들고 있는 작품들은 한층 화사한 느낌을 자아낸다. 자연과 함께하는 이곳 생활이 무척 만족스럽다고. 그 즐거운 경험을 작품에 녹여내는 시도들로 그의 하루는 채워지고 있다.

낯선 나 - 강경미
너무 힘들 땐, 헛웃음이 나오듯이. 억압된 감정으로 터질 듯이 부풀어 오른 몸뚱이가 애절한 춤을 춘다. 강경미 작가의 작품은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 비대한 여체를 표현한 작품이다. 작가는 일률적인 미의 기준으로 잣대질 당하며 쌓여온 분함, 때가 되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정해진 순서를 밟으며 살아 가라는 사회의 분위기에 대한 갑갑함, 그런 여자로서의 억압된 감정들을 풍선을 불 듯 분출해 작품을 만들었다. 팽창할 대로 팽창한 몸통은 머리 대신 풍선 꼭지를 달고 있다. 너무 꽉 차버려서 생각조차 없애고 싶었던 작가의 심정을 대변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 세상과 단절하고 싶었던 그에게 ‘낯선 나’가 찾아왔다. 끊임없이 나를 억압하던 이 시스템들이 어느새 편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안주하려는 자신이 너무 낯설었지만, 어린아이가 엄마에게 안기듯 편해졌다. 그리고 그는 이곳에서 오랜만에 값진 해방감을 느끼고 있다. 도예기법을 익히며 원 없이 만들어 보는 소중한 순간들을 새 작품에 불어넣고 있다.

비밀의 공간 - 함연주
방. 그만의 공간. 그 속에서 포근한 의자에 몸을 묻는다. 그리고 창을 통해 세상을 연다. 열린 3차원의 공간은 2차원 평면으로 압축되고, 그 압축된 벽은 거울을 통해 무한히 증식한다. 그리고 그 벽들이 또 다른 공간을 만들어낸다. 함연주 작가의 작품은 꿈속에서의 상상력을 현실로 표현한 듯했다. 말로 풀기도, 그림으로 그리기도 어려운 것들을 도자 작품으로 정밀하게 표현해낸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공간을 압축해 평면으로 만든 작품들은 그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시 원래의 공간으로 펼쳐지는 느낌을 받는다. 문양도 실내 공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쿠션, 열쇠 구멍, 손잡이 등이 평면에 빨려든 모양이다. 실로 미래적 발상의 도예, 그 첨단을 달리는 작품들이라 할 만했다. 그는 이곳에서 물 만난 고기처럼 자신의 기량을 마음껏 펼치며 전시회 작품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그리고 이제껏 많이 할 수 없었던 입체적 설치가 가미된 작품들을 구상하고 있었다. 이제 곧 그 구상들은 이곳 이글거리는 가마에서 걸출한 작품으로 태어날 것이다.


작성일. 2021. 05.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