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김해문화관광 웹진

search
초월의 소리꾼 장사익을 바라보는 한 음악평론가의 시선
시련과 극복의 상징, 소리꾼 장사익

‘시련과 극복’, 이 말을 긍정적으로만 생각하는 사람은 이 땅에 많지 않다. 장사익 세대가 그렇다. 시련과 극복(1972년)이란 교과서나 과목명을 접한 사람은 이 뜻을 온전하게 받아들일 수 없는 안타까움이 있다. 한국의 근현대사와 연관된 아쉬움과 아픔이다. 나는 이 말을 늘 긍정과 부정 사이로 생각했다. 그런데 시련과 극복이란 말을 얼마 전 장사익을 통해서 매우 아름답고, 숭고한 말로 다시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의 삶이야말로 시련과 극복이다. 대한민국 천하제일 소리꾼 장사익이 몇해 동안 고생을 했다. 목에 탈이 난 거다. 노래를 좋아하고, 노래를 잘 부르는 사람이 노래를 부르기가 힘들어졌으니 그 심정이 어떠했을까? 그런데도 장사익은 원망하지 않았다. 당황하거나 체념하지도 않았다. 현실로서 인정했지만, 늘 긍정적인 사고를 잃지 않았다. 차츰 시련을 극복해 나갔다. 이것이 바로 시련과 극복이다.

그의 극복 과정을 보면 ‘은근과 끈기’라는 말이 생각난다. 한국인의 근본적인 민족성을 은근과 끈기라고 하지 않는가! 한국의 역사가 유구하게 이어져올 수 있었던 것은 은근과 끈기의 자세로 시련과 극복의 통과의례를 넘어와서이다. 돌이켜보면, 이것은 목 상태가 좋지 않았던 몇 해뿐만 아니라 지금까지의 장사익의 삶이 그렇다는 생각을 해본다.

우리가 장사익의 노래를 듣는다는 건, 시련과 극복이 점철된 우리의 근현대사와 그 세월을 살아온 소리꾼을 만나는 일이다. 또 그런 상황을 깨부수거나 체념하기보다 은근과 끈기의 자세로 자신의 신념을 끝까지 끌고 가는 삶의 태도를 만나는 일이다. 장사익의 이런 삶과 노래는 아버지의 노래인지 모른다. 우리 이전 시대를 슬기롭게 이겨낸 그들의 메시지가 노래 속 쉼표에서 고스란히 전해지는 느낌이다. 그의 노래가 갖는 위대함은 바로이런 것이다!

장사익은 명창(名唱)이다. 그러나 그에게 어울리는 말은 아니다. 명창이라 하면 국악에 한정하는 경우도 많고, 동시대성이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장사익은 한국적인 노래를 부르지만, 과거의 노래를 부르는 분은 아니다. 그렇다면 장사익에게는 국민가수라는 말을 붙여야 하나? 이것 또한 아니다. 장사익은 가요를 부르지만, 노래를 ‘가요처럼’ 부르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도 장사익은 국민가수가 아니며 이를 초월한 ‘유일한 소리꾼’이다.

민요를 가요처럼, 가요를 민요처럼 부르는 사람이 장사익이다. 오페라, 판소리, 경기민요, 트로트, 재즈 등 그 장르 특유의 노래를 부르는 방식이 있다. 장사익의 목소리와 노래는 이 모든 것을 수용하면서, 이 모든 것을 초월하고 있다.

장사익은 시련과 극복의 소리꾼이며 ‘수용과 초월’의 소리꾼이다. 이 땅에는 많은 소리꾼이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소리꾼의 목소리를 알 수가없다. 사람의 목숨과 함께 소리도 함께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리를 기록하는 수단이 생기면서, 우리는 그 노래를 지금도 들을 수 있게 되었다. 그 역사 속에 장르별 위대한 소리꾼은 많으나, 장사익처럼 장르를 초월한‘전천후(全天候) 소리꾼’은 유일하다. 장사익의 노래는 비 오는 날엔 구성지게, 화창한 날엔 희망차게, 꾸물꾸물한 날엔 다정하게, 뜨거운 여름날엔 시원하게 느껴진다. 이게 장사익의 미스터리이자 아이러니다!

그의 노래에는 웃음과 울음, 해학과 위안이 있다. 가장 본원적인 정서를‘퉁’하고 건드린다. 마음의 빗장이 홀짝 열린다고 해야 할까? 폭포수가 장쾌하게 콸콸 쏟아진다고 해야 할까? 이런 게 카타르시스이자 온전한 힐링이다. 이제 당신이 그런 경험을 할 차례 아닌가?


작성일. 2019. 03.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