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로왕은 가야를 건국한 이후 수 년 동안 왕비가 없었다. 저마다 자기 가문의 여자를 왕비로 세우려던 신하들의 청을 물리치던 어느 날, 수로왕은 한 신하를 시켜 가야 남쪽의 망산도로 배 한 척을 보낸다. 수로왕의 명을 받아 망산도에 도착한 신하는 붉은 돛을 달고 붉은 깃발을 휘날리는 배를 만난다. 배에 탄 여인은 인도 아유타국의 공주인 허황옥이었다. 두 사람은 하늘이 맺어준 인연을 기뻐하며 백년가약을 맺는다. 삼국유사에 실린 이 일화는 우리나라 최초의 국제결혼 사례로 일컬어진다. 지역 역사의 기운이 이어져서일까. 오늘날 김해는 경상남도에서 가장 많은 외국인이 살고 있는 도시이다.
동성로 외국인거리는 이러한 김해를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장소다. 경남의 이태원으로 불리는 이곳은 원래 김해의 원도심이었다. 일제강점기에 놓인 14호 국도는 이곳을 지나는 ‘큰 길’이었다. 시간을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김해 읍성의 관공서가 터를 잡고 있었던 이곳은 이제 아시아의 온갖 전통요리 간판들이 시선을 끌고 있다. 그 거리의 한쪽, 생경한 얼굴과 언어들이 어우러진 골목길 위에 다문화 카페 통이 자리 잡고 있다. 카페 통의 시작은 다분히 의도적이었다. 결혼이주여성들이 지역 사회에 자연스럽게 정착하기 위한 지역 공약 사업이었지만, 창업 이후 카페 통은 다소 삐걱거렸다. 사회적 기업으로 운영 지원을 받은 터라 일부 주변 상인들의 불만을 샀던 것이다. 음료만 판매하는 곳임에도 인근 외국인 음식점들로부터 음식을 판매하는 것 아니냐며 오해를 받기도 했다. 일부에서는 우리나라 청년들도 일자리가 없는데, 굳이 이주여성들을 위해 예산을 쓸 필요가 있냐는 볼멘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우여곡절을 겪던 이곳에 오미숙 대표가 들어온 것은 2012년이었다. 김해 여성자치회를 통해 이주여성들과 현지 여성들의 결연 사업을 진행하며 지역 이주여성에 대한 관심을 이어오던 오 대표는 주변의 권유로 카페 통에 몸을 담았다. “제가 사회적 기업을 운영하겠다는 의지가 있었던 건 아니었습니다. 이 카페가 생기고 난 후 주변에서 말들이 생기니까, 이주여성들하고 인연을 이어오던 제게 도움을 주면 어떻겠냐는 권유가 많았지요. 당시 여성자치회는 다문화가족 지원센터와 업무 협약을 맺고 이주여성들에 대한 직업 훈련을 진행하고 있었는데, 이곳이 새로운 가능성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봉사하는 마음가짐으로 시작한 일이었어요. 그런데 카페에 와보니 운영이 제대로 되고 있지 않더라고요. 이곳에 있던 이주여성들에게 카페는 일하러 오는 곳이라는 걸 인식시키는 게 처음 한 일이에요. 매출을 위해 365일 문을 열기로 하고, 직원들의 순환 근무 일정을 짰습니다.” 주로 다문화가족 지원센터를 통해 인력을 충원하는 카페 통은 이주여성들에겐 인기가 높은 직장이다. 오 대표를 비롯한 다문화권 선배로부터의 직업 교육과 함께 타향살이의 동질감까지, 이주여성들에게 카페 통은 단순한 일터를 넘어 일종의 소속감을 주는 공동체이다. 공장으로 직장을 옮겼다가 이곳이 그리워 다시 돌아온 직원도 있었다. 여러 나라의 사람들이 함께 일하면서 직원들 간에 언어적 충돌도 발생했다. 그러면서 직원들이 뿔뿔이 흩어지기도 했다. 오 대표는 이런 일을 겪으면서 대표로서 한층 더 단단해지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사업 초기 어머니의 마음으로 직원들의 경조사를 챙기며, 직원들의 사기에 세심한 신경을 쓰던 오 대표는 자신의 사소한 칭찬이나 격려가 오히려 이주여성들의 오해를 살 수도 있다는 사실에 이제는 행동을 신중히 하고 있다.
카페 통과 함께한 지 6년, 오 대표에게 이곳은 어떤 의미일까. “처음부터 제가 준비해서 시작한 곳이 아니었기 때문에 지원 사업에 관한 서류 준비도 미비해 사업 초기 놓친 부분이 많았어요. 게다가 사회적 기업은 만 6년이 지나면 지원이 완전히 끝나요. 저희가 지금 6년째거든요. 중간에 1년간 공백기도 있었고요. 사실 힘든 순간이 많았죠. 그동안 이곳에 개인적으로 운영 자금도 많이 쏟아 넣었습니다. 이제는 그만둘 수는 없을 것 같아요. 그런 시기도 놓쳤고.(웃음) 무엇보다 제가 좀 힘들다고 그만두면 안 될 것 같아요. 지금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어디로 갈지, 주변에서 이주여성들과 함께 일하면 항상 끝이 안 좋았다고 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걸 보여주고 싶습니다. 일부 사람들에게 이주여성들은 게으르다는 등의 선입견이 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아요. 제가 함께 일하며 느낀 건 오히려 더 청결하고 열심히 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이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함께 성장하고 싶어요.”
오 대표를 비롯한 카페 통 구성원들의 노력은 성과를 얻기도 했다. 지난해 여름 김해시청 내에 카페 통 2호점이 문을 연 것. “여전히 넉넉한 운영은 힘들지만, 시청 2호점을 개업하면서 상황이 많이 나아졌습니다. 저희는 재료를 좋은 걸 씁니다. 사람들에게 사회적 기업이라 하면 왠지 ‘취지는 좋지만 제품을 글쎄?’ 라는 인식이 있잖아요. 그런 인식이 안타깝습니다. 그래서 좋은 마실 거리를 제공하려고 애쓰고 있어요.얼마 전에 시청점을 찾은 손님 한 분이 ‘이 가격에 이렇게 맛있는 커피를 줍니까?’라고 하시더라고요. 저에게는 굉장히 의미 있는 칭찬이었습니다.”
지역 사회와 이주민 사이의 작은 가교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오 대표는 개인적인 경력도 장점으로 작용했다. 해설사로 20년 가까이 지낸 오 대표는 김해의 다양한 역사 이야기를 외국인에게 들려주면서 벽을 허물었다. 불교 신자로서 동남아시아의 여러 지역을 가본 경험도 다문화 이주민들과의 거리를 좁히는 데 한몫을 했다. 오 대표는 카페를 운영하며 개량한복을 입고 골목을 지나는 이들에게 인사를 나누고, 사진도 찍었다. “카페 통이 생기면서 로데오거리에 대한 인식 개선이 많이 되었다고 자부합니다. 사실 지금까지 이쪽 골목은 외국인 밀집지역이라 무서워서 못 다닌다는 이야기가 많았어요. 제가 동남아의 여러 나라를 다녔지만 어디를 가도 위험하거나 어렵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습니다. 우리나라에 온 외국인 근로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편견을 조금 내려놓으면 누구와도 거리낌 없이 이야기할 수 있거든요.”
오 대표는 카페 통의 미래에 대한 희망도 잊지 않았다. “2호점을 개업했고, 앞으로 케이터링 서비스도 적극적으로 구상 중입니다. 올해 목표입니다. 저희 건물 5층에 작은 공간이 있는데, 다문화 공동체가 모여서 다양한 프로그램도 운영합니다. 음료값 외에는 장소 대여료도 받지 않고요. 올해도 이주여성들이나 근로자들이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나 사업에 지원해 운영할 생각입니다. 카페 통을 통해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에서 이주여성들이 조금 더 잘 살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면 굉장히 행복해지죠. 그러려면 저희도 외부 지원을 넘어 자립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많은 분들이 조금 더 이곳을 돌아봐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커피는 천 가지 향기가 난다고 한다. 수많은 향이 응축된 한 줄기 연기는 태양이, 흙과 비가, 그리고 농부의 땀이 피워낸 결정체일 것이다. 시장의 작은 골목, 한눈에 띄기 힘든 작은 카페가 품고 있는 수많은 사람 이야기가 짙은 커피 향보다 더 따뜻하고 달콤하게 다가오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