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에서 2021년 11월 4일부터 2022년 4월 3일까지 〈네 개의 방, 네 개의 질문〉이라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이 전시는 2021년 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 세라믹창작센터 입주작가들이 3월부터 12월까지 입주하며 경험한 다양한 생각들을 전시로 엮어내 시민과 공유하는 결과보고형 전시다. 전시에는 네 명의 작가 강경미, 신예진, 정지숙, 함연주가 참여하며 도자 및 설치작품이 약 50여 점 출품되었다. 매년 열리는 전시지만, 이번에는 과거에 볼 수 없었던 방 형태의 전시공간 분할이 돋보였고, 작가의 스튜디오를 살짝 엿볼 수 있는 창작스튜디오 소개 코너가 마련되어 전시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세라믹창작스튜디오와 작가 작업실을 엿볼 수 있는 인트로를 지나면 함연주의 방 ‘Space Surrounded By’가 나타나고 이어 강경미의 방 ‘그녀’를 만날 수 있다. 정지숙의 방 ‘살아있는 덩어리’와 신예진의 방 ‘자연 13BL 지역재개발 정비사업 : Pre-Design’을 보고나면 전시는 끝이 난다. 각 방에는 작가의 작업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작품과 작가 노트 등이 배치되어 있는데 흥미롭게도 방의 마지막 부분에는 질문이 하나씩 적혀 있고, SNS 링크를 통해 답을 적을 수 있도록 QR코드가 벽에 부착되어 있다. 사실 질문에 대한 대답은 작가의 작품을 통해 풀어놓고 있지만, 관람객 개인의 응답을 취합해 이 내용을 공유하고자하는 기획의도가 엿보여 무척 흥미로웠다. 실제로 팬데믹으로 우리의 방은 물리적으로 고립되어 있으면서도 동시에 편안한 안식처 역할을 수행했는데, 한편으로는 온라인 소통을 원활하게 할 수 있는 자신만의 아지트 역할을 하기도 했다. ‘네 개의 방’은 이렇게 ‘네 개의 질문’을 던짐으로써 실제 우리 방의 특성을 전시실에 구현하고 있었다.
당신의 방은 어떤 보석을 가지고 있습니까?
함연주
함연주 작가는 일반적인 ‘공간’을 한 사람의 특정한 기억과 엮으면서 어떤 의미를 가진 ‘장소’로 변환하는 작업을 해왔다. 이 번 전시에는 방과 기억을 한데 섞어 독특한 스타일의 전시공간을 만들어냈다. 실제로 전시공간에서 기억의 파편을 발견할 수는 있지만 그것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알아낼 도리가 없다. 하지만 분위기는 느낄 수 있다. 예컨대 보라색 방 중앙에는 음각되어 구멍이 숭숭 난 거울이 영롱한 소리와 함께 움직이고 있는데 360도 회전하는 거울은 방 안의 사람들을 방의 일부로 끌어들여 너와 나의 기억을 한데 섞어 일시적으로 기억과 방을 공유하게 만든다. 그래서 함연주 작가가 던지는 질문 ‘당신의 방은 어떤 보석을 가지고 있습니까?’에서 보석은 기억으로 전환 될 수 있다. 방에 쌓인 물건 자체가 일종의 삶의 기억이기도 하니 우리의 방은 우리의 기억을 보존하는 일종의 보석함이기도 하다.
당신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요?
강경미
강경미 작가는 도발적이다. 작품의 이미지도 그러하지만 작가노트에서 드러나는 삶에 대한 문제의식은 더욱 그러하다. 우리는 일상을 정신없이 살아갈 때, 특별히 고민을 하지 않고 하루하루를 보낸다. 당장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 매일 버티는 것이 최선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떤 특별한 순간, 그것이 좋은 일일 수도 있고 나쁜 일 일 수도 있지만, 일상이 멈추거나 무너지는 순간이 오면 ‘내 삶은 도대체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된다. 강경미 작가는 이러한 순간을 전시를 통해 열어 보이는데, 대한민국 여성으로서 알게 모르게 요구되는 어떤 규범 속에 갇혀 살아가는 삶에 의문을 던진다. 그래서 전시실에서 만나게 되는 비대한 몸을 가진 여성 신체는 우리에게 미적 쾌의 영역이 아니라 반성과 비판이라는 사유의 순간을 선사한다. 주변의 많은 제약을 벗어나 진정 나 자신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는 시간은 그래서 소중하다.
당신의 영혼은 무슨색인가요?
정지숙
정지숙 작가의 최근 관심사는 살아 있는 나 자신과 세계의 연결인 것 같다. 살아있음은 생물학적인 언어이지만, 우리가 살아있음을 느끼는 순간은 관계의 확장을 전제로 한다. 내 몸의 살아있음도 중요하지만 이렇게 살아 있는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구나를 절실히 느낄 때 우리는 비로소 살아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그래서 죽음은 단순히 심장이 멈추는 것을 넘어서 이 세계에서의 사라짐을 의미한다. 이번 전시에 등장하는 여러 생명체들이 형태만 갖춘 채 유동적인 덩어리로 보이는 건 세계와 연결된 생명체의 특징을 시각화하기 위한 전략으로 이해된다. 경계가 모호한 생명체는 왠지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영혼과 닮아 있다. 그래서 작가는 질문을 던진다. ‘당신의 영혼은 무슨색인가요?’
당신이 바라보는 자연은 어떤 모습일까?
신예진
신예진 작가는 자연의 겉모습이 아닌 기억이나 역사가 가미된 자연을 재가공해 낯설고 인공적인 자연을 우리 앞에 펼쳐놓는다. 자연이 인공적이라는 건 사실 있을 수 없는 일종의 형용모순이지만, 안타깝게도 현재의 자연은 인간의 폭력적인 개발에 의해 자연스럽지 않은 모습으로 변형되고 있다. 작가는 이러한 점에 착안해 ‘폭력에 노출된 자연이 그것을 어떻게 표출할까?’라는 지극히 인간적인 입장에서 자연을 재형상화한다. 이렇게 나타난 자연은 사뭇 위협적이고 공격적이다. 인간 스스로 세계와 공존을 무시하고, 인간 사회의 이익만을 쫓아 자연을 파괴하고 삭제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기에 이제 자연은 인간의 삶을 위협하는 낯선 두려움으로 다가오게 되었다. 실제 기후위기는 인간에 의해 망가진 자연의 몸부림인데, 우리는 이를 자연의 복수, 보복으로 생각하기도 하니, 작가가 던지는 질문을 이해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그래서 이제 우리 앞에 던져진 질문에 뭐라고 답할 수 있을까. ‘당신이 바라보는 자연은 어떤 모습일까?’
네 명의 작가는 우리에게 각각 다른 질문들을 던지고 있지만, 사실은 공통된 질문을 하고 있다. 기억, 삶, 생명, 자연은 각기 다른 범주에 속한 개별적 문제로 보이지만, 세계를 하나의 인드라망으로 이해하면 이들은 모두 일종의 그물망에 얽혀 관계 맺고 있는 상호보완적 개념들이다. 그래서 질문은 하나로 수렴된다. 코로나19로 고립을 경험한 우리에게 이 질문은, 세계 내에서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야할지 결코 가볍지 않은 화두로 다가온다.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