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라는 계절이 주는 정서가 있다. 맹렬한 기세로 공격하던 햇빛의 드센 기운도 잦아들고 붉게 변한 나뭇잎들은 어제의 푸르름이 무색하게도 서늘해진 바람결에 우수수 떨어지기 시작한다. 모든 것이 저물어가는 풍경을 보고 있노라면 삶의 허무함이 느껴지기도 하고 외롭고 고독한 감성이 몰려온다. 계절이 일으키는 마음의 동요를 다스리기 위해 사람들은 책도 읽고 낙엽이 떨어진 길을 걸으며 내면에 집중하는 시간을 보낸다. 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은 가을이 내려앉은 정원에서 예술작품에 앉아 고요히 사색하는 시간을 가져보길 권한다.
미술관 입구에 넓게 펼쳐진 마당에 둥글게 놓인 아트벤치는 조각가 변대용의 작품 ‘사색의 시간’이다. 작품은 너비 7m, 폭 4.5m, 높이 2m의 규모로 부드러운 파스텔 색감의 구조물에 작가의 대표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아이스크림곰이 올려 있다. 변대용 작가는 부산감천문화마을, 거제시 신촌예술터, 김해봉황예술극장 등 풍부한 공공조형물 제작 설치 경험을 바탕으로 클레이아크의 외관, 풍경, 지형과 조화를 이루는 데 집중해 작품을 구상했다고 한다. 작품 ‘사색의 시간’은 물 한잔을 하며 잠시 쉬고 있는 곰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작품 속에서 아이스크림곰은 동물이지만 인간의 삶을 은유적으로 비춰주는 존재다. 인간세상에서 일어나는 무겁고 어두운 이야기들은 사랑스러운 아이스크림곰의 형상을 통해 위트 있게 전달되고, 예술작품만이 가진 이 특별한 소통방식을 통해 사람들에게 위로와 위안을 건넨다. 작가는 이번 작품을 통해 바쁨이라는 것을 잠시 내려놓고 물 한잔, 커피 한잔을 마시며 주변 풍경을 둘러보자고 말한다.
커다란 원형의 의자에 크고 작은 원형 띠가 여기저기 걸쳐있다. 원형의 구조들은 개개인 저마다 속한 작은 공동체를 의미한다. 자신이 속한 크고 작은 집단 속에서 겪는 희로애락을 우리는 서로 공유한다. 의자는 보통 계급과도 같은 사회적 위치의 높고 낮음을 상징하는 장치이기도 하지만 변대용 작가의 의자에는 아무런 위계도 없고, 앉도록 정해진 방향과 법칙도 없다. 그저 모두가 함께 앉아 주위의 모든 풍경을 고스란히 눈에 담을 수 있고, 맞은편 사람과 도란도란 얘기를 나눌 수도 있으며, 혼자 오롯이 자신의 내면에 집중하는 시간을 보낼 수도 있다.
전시는 12월 26일까지 지속되며 전시 기간이 끝난 후에도 작품은 그 자리에 남아 미술관을 찾아오는 관람객을 위한 쉼터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그 어느 때보다 마음의 휴식이 필요한 지금. 현실의 시름과 바쁨을 잠시 내려놓고 하얀 아이스크림곰과 함께 차가운 물 한잔, 따뜻한 커피 한잔 호로록 마시면서 쉬어가길 바란다.
INFO
기 간 2021. 9. 17.(금)~12. 26.(일)
장 소 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 입구
참여작가 변대용
문 의 055-340-7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