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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유리, 빛을 머금은 예술로
환경미술작가 이상형
글.김달님 사진.백동민
김해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이상형 작가는 일상에서 흔히 버려지는 강화유리 파편을 모아 새로운
예술로 되살린다. 그의 손끝에서 다시 태어난 작품은 단순한 조형물이 아니라
순환과 회복, 지속 가능성의 가치를 담은 메시지다. 폐허에서 꽃이 피어나듯, 깨진 순간부터 또 다른 이야기를 시작하는 그의 유리는 관람객에게 끝이
아닌 또 다른 시작을 믿게 한다. 2025 경남아트페어 현장에서 만난 그는 여전히 파편 속에서 빛을 길어 올리고 있었다.

깨진 순간, 또 다른 이야기가 시작되다

이상형 작가와 유리의 인연은 우연에서 비롯됐다. 인테리어 목수로 일을 하는 그는 어느 날 유리창을 철거하기 위해 깨뜨렸다가 바닥 가득 흩어진 유리 조각들이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장면을 보았다. 그 반짝임에 매료된 순간, 유리 조각은 더 이상 폐기물이 아닌 새로운 가능성으로 다가왔다. “이 조각들을 가지고 무언가를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강하게 일었고, 그는 그 순간을 ‘세렌디피티(serendipity)’*라고 부른다. 의도치 않은 발견이 작업의 출발점이 되었기 때문이다.
*완전한 우연으로부터 중대한 발견이나 발명이 이루어지는 것.

“금속공예를 전공하고 주얼리 디자이너로 일했었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반짝임에 끌렸던 것 같아요. 다만 주얼리 작업은 보석 한 피스, 한 피스가 모두 고가지만, 폐유리 조각은 비용이 들지 않아서 제가 표현하고 싶은 걸 자유롭게 시도할 수 있었어요. 가끔 제작품을 처음 보신 분들이 ‘이건 어떤 보석으로 만든 거냐’고 물어 보시는데, 폐유리라고 말씀드리면 다들 놀라세요.”

무엇보다 그가 폐유리를 이용한 작업에 끌리는 이유는, 쓸모를 잃고 버려진 유리가 다시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하기 때문이다.

“유리는 폐기물이 되기 전에는 유리문이나 창문으로 일상에서 기능성을 가진 물체로 존재하지만, 철거되거나 버려지는 과정에서 파편이 되면 그 자체로는 쓸모를 잃습니다. 그러나 작품의 소재로 다시 모이고 겹쳐지면 빛을 머금어 더욱 깊고 다채로운 표정을 갖게 되죠. 결국 저의 유리는 깨진 순간부터 또 다른 이야기를 시작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처럼 유리 파편이 ‘다시 살아나는’ 과정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단순한 재료의 활용을 넘어 삶에 대한 성찰로 확장된다. 깨진 조각이 다시 모여 빛을 품듯, 실패와 상처를 겪은 개인 역시 삶을 재구성하며 더 단단해진다. 그는 자신의 작품을 통해 관객들이 ‘끝이 아닌, 또 다른 시작’이라는 희망을 발견하길 바란다.

“사회에서 한 번 역할을 다한 것처럼 보이는 물질이나 혹은 퇴직자, 실패를 경험한 사람들도 버려진 것이 아니라 새로운 가능성을 품고 있다고 믿습니다. 제 작품은 그것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과정이자, 희망의 은유입니다.”

‘이상형’이라는 세계를 보여주는 작품과 무대

그렇다면 이상형 작가가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으로 꼽는 것은 무엇일까.

“첫 개인전에서 선보였던 입체 달항아리 작품을 꼽고 싶습니다. 제가 직접 겪었던 특별한 순간이 담겨 있기 때문이에요. 부산시 민락동 179-12에서 공사를 하며 떼어낸 유리창 조각들을 재료로 삼았는데, 그때 창을 떼어내며 바라본 해운대 바다의 눈부신 풍경이 제 가슴속에 깊이 새겨졌습니다. 바닷빛이 반짝이며 유리에 스며드는 듯한 그 장면은, 훗날 파편들이 모여 달항아리의 원형을 이룰 때 자연스럽게 떠올랐죠. 그래서 이 작품은 단순한 재탄생을 넘어 바다의 기억과 우리 문화의 정서까지 함께 품은 특별한 작업이 되었습니다.”

이후 그는 다양한 전시를 통해 관객과 만났다. 지난해 경남국제아트페어에서는 그의 작품이 전량 판매되는 성과를 거뒀다. 당시에는 판매를 목표로 했기에, 집 안에 두었을 때 화사함을 줄 수 있는 크기와 색감을 고려한 작품들을 선보였다. 그러나 올해 경남아트페어에서의 마음가짐은 달랐다.

“판매보다는 ‘이상형’이라는 이름을 각인시키고, 제 색깔을 강렬하게 보여주는 데 초점을 맞췄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판매가 쉽지 않은 가격대라 하더라도, 저를 온전히 드러낼 수 있는 작업들을 출품했어요. 대표적으로는 가장 최근에 작업한 달항아리를 선보였습니다.”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여러 관객들이 이상형 작가의 부스를 찾았다. 반짝이는 유리 작품 앞에서 발걸음을 멈춘 이들은 처음 마주한 빛에 매료된 듯, 한동안 시선을 거두지 못했다. 그들의 마음속에 ‘이상형’이라는 작가의 이름이 새겨지는 순간이었다.

끝이 아닌, 또 다른 시작을 향해

금속공예를 전공하고 주얼리 디자이너로 활동했던 그는 재료의 경계에 얽매이지 않는다. 건축·인테리어 분야에서 접한 도료나 코팅, 면처리 기술을 작품에 접목하며 표현의 결을 확장해 왔다. 앞으로도 유리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재료와 방식으로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넓혀갈 예정이다.

그는 또한 김해 도슨트갤러리를 운영하며 신진 작가들에게 전시 무대를 열어주고 있다. “누구나 제대로 된 전시장에서 좋은 전시를 할 수 있어야 한다”는 믿음으로, 갤러리를 작가들에게는 든든한 무대, 관람객에게는 새로운 예술을 만나는 따뜻한 공간으로 키워가고 있다.

그의 발걸음은 올해도 분주하다. 경남아트페어(9월) 이후 양산 모아아트센터 개관전(10월), 서울아트쇼(12월)까지 다양한 전시가 이어진다. 유리 파편에서 다시 빛을 발견했던 순간처럼, 이상형 작가의 여정은 늘 새로운 시작을 향한다. 그는 끝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을 또 다른 가능성의 출발점으로 바라본다. 파편 속에서 길어 올린 빛은 앞으로도 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비추게 될 것이다.

작성일. 2025. 09.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