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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라이트

김해문화재단, 문화의 문턱을 낮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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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서부문화센터 하늬홀 <손열음 리사이틀> 5월 예정
피아니스트 손열음의 어제와 오늘

5월 28일(목) 피아니스트 손열음의 리사이틀이 김해서부문화센터 하늬홀에서 열린다. 베토벤의 <안단테 파보리>, <소나타 발트슈타인>, 슈만의 <아라베스크>, <판타지>가 연주될 이번 리사이틀은 4월 11일(토)에 열리기로 했지만, 코로나19로 인해 한 차례 연기 됐다. 손열음뿐만 아니라 전 세계 클래식 연주자 누구도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이다. 세상이 멈춘 듯한 착각마저 드는 요즘, 의지가 있는 음악가라면 오직 자신과 작품의 대화에만 몰두할 시간을 가질 것이다.

될성부른 떡잎, 손열음의 데뷔
1986년 원주에서 태어난 손열음은 2000년 독일 에틀 링겐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우승하면서 세계 무대에 데뷔했다. 국내 평단에서는 2003년 예술의전당이 주최하는 교향악축제에 박은성 지휘의 수원시향과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3번>을 연주하면서 ‘피아노의 마녀(魔女)’, ‘마르타 아르헤리치의 재래’라는 찬사를 받았다. 故 박성용 금호 회장은 손열음의 어린 시절의 인성과 가능성을 내다보고 후원을 시작했다. 그 결과, 손열음은 한국과 일본에서 뉴욕 필하모닉, NHK 교향악단, 도쿄 필하모닉 등 일류 아시아 악단과 의 협연 기회가 마련됐고, 도전할 때마다 성장하는 모습이 음악 관계자들을 사로잡았다.

일시 2020.05.28.(목) 20:00
장소 김해서부문화센터 하늬홀
연령 8세 이상 관람가
좌석 VIP석 60,000원 / R석 40,000원
할인 김해 시민, 장애인, 국가유공자 50% 할인 ※ 홈페이지 참조
문의 055-344-1800
※ 코로나19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공연 및 전시 일정이 변경 또는 취소될 수 있습니다.

손열음은 10대 시절부터 음악뿐 아니라 글쓰기도 능란했다. 미니 홈페이지가 유행하던 시절, 특히 미술 작품에 관한 이야기를 쓰면 보는 이로부터 찬탄을 자아낼 만큼 감수성이 풍부했고, 작품 해석 능력과 공감을 이끄는 문장력도 탁월했다. 예술가로서의 심상을 대중과 공감하는 방식은 <중앙 SUNDAY>에 5년 동안 기고한 칼럼집 『하노버에서 온 음악 편지』에 고스란히 기록으로 남아있다. 하노버는 손열음이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졸업하고 유학을 위해 찾은 독일 도시다.

제너럴리스트’ 손열음이 되기까지

손열음은 전문 연주가로 나아가기 위해 먼저 미국 시장에 도전했다. 그녀는 반 클라이번이 자신의 이름으로 만든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2009년 준우승을 거뒀다. 텍사스에서 태어난 피아니스트 반 클라이번(1934~2013)은 인류 최초의 인공 위성 스푸트니크호 발사 성공으로 고무된 모스크바에서 열린 1958년 1회 차이콥스키 국제 음악 콩쿠르에서 우승했다. 지금도 반 클라이번은 미국인에게 냉전 시대 미국 고급 문화를 대표하는 인물이자 뮤지션 이상의 존재로 추앙 받는다.

주위에선 미국 최고의 피아노 경연에서 우승 문턱까지 다다른 성과를 눈부신 성공이라고 축하했지만, 손열음은 목표를 러시아로 변경했다. 그리고 2011년 여름, 자칫하면 그동안의 입상 경력을 모두 수포로 만들 수 있는 도전에 나섰다. 4년마다 열리는 세계 최고의 경연인 제14회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에 출전했다. 대부분의 음악 관계자는 “우승이 아니면 손해”라고 우려했지만 결국 두 개의 특별상과 함께 준우승을 거머쥐었다. 공연 관계자들은 대회 내내 떨지 않는 손열음의 침착함에 주목했는데, 사실은 결선 하는 동안 신경 안정제를 처방받아 먹었다고 술회했다. 모스크바의 성공 이후 손열음은 국제 시장에서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손열음은 특정한 시대의 작곡가와 사조에 몰두하는 ‘스페셜리스트’보다는 피아노라는 악기를 매개로 자신과 주변을 살피는 ‘제네럴리스트’의 자취가 선명하다. 피아노는 연주할 작품이 워낙 방대해서 대부분의 음악가는 특정한 사조의 이해에 오랜 시간을 들이지만, 손열음은 다양한 레퍼토리를 골고루 섭렵하는 즐거움을 통해 음악사(音樂史)와 대화를 나눈다.

손열음의 성장, 자강불식의 자세로 일궈내다

한동안 손열음이 일군 음악적 성공을 두고, ‘한국 교육이 낳은 쾌거’로 규정하는 시각도 있었다. (재)금호문화재단이 영재를 육성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의 교육을 통해 성장했다는 해석으로 흔히 손열음을 ‘K-클래식’의 성공 사례로 꼽았지만, 국제 시장에서 존중받는 관점은 다르다. 손열음은 2006년 하반기에 하노버로 건너가서, 아르에 바르디 교수 문하에 머물며 피아노와 음악을 바라보는 안목이 높아졌다. 단순히 교육 환경이 바뀐 결과가 아니라 손열음은 이 시기에 스스로 강해지는 법을 익혔다. 세간은 손열음이 거둔 성과에만 집중했지만, 그녀가 지나온 과정은 고배의 연속이었다. 부당한 결과를 받아들이는 법, 정신적 내상을 입지 않는 단련 등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고 더 나은 자아를 실현하려는 노력과 태도가 손열음의 진정한 저력이다. 예술적 자아가 성숙하는 동시에 성숙한 시민으로 존중받을 나이가 되면서 행정적 책임도 손열음에 주어졌다. 2018년 3월부터 강원도는 평창대관령 음악제의 예술감독을 손열음에게 맡겼다. MBC ‘TV 예술무대’를 진행하고,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이유도 클래식을 바르게 알리기 위해서다.

손열음은 고향 농구팀 원주 DB 프로미의 열렬한 서포터였다. 지금은 예전 만큼 응원하는 데 시간을 할애할 수 없지만, 한때는 농구 시즌의 거의 모든 경기 결과를 살피며 해외에선 인터넷으로 경기를 시청했고, 국내에선 경기장에서 직접 경기를 관람했다. 원주 DB 프로미 선수들이 손열음 자택으로 찾아오기도 했고, 손열음은 챔피언 결승전을 앞두고 한우를 선수단에 기증할 정도였다. 음악가들이 지칠 때 스트레스를 푸는 건전한 수단으로 스포츠는 더할 나위 없는 안식처이자 에너지원임을 손열음과 원주 DB 프로미의 관계가 증명한다.

손열음을 오늘날까지 이끈 건 외로움과 슬픔에 대처하는 성숙한 자세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5년마다 열리는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는 홀 로비에서 결선 진출자를 발표하는데 2005년 당시 손열음의 결선 진출을 응원하는 주위의 환호성은 없었다. 자축하려고 근처 패스트푸드점에서 햄버거를 먹으려는데 작은 체구의 노인이 들어와서 음식 주문 대신 주머니에서 풋사과를 꺼내 천천히 먹는 장면을 바라봤다. 그녀의 음악회에 가면 노인이 자리에서 일어나 힘든 몸을 이끌고 문밖으로 나가는 모습을 보며 대회 동안 참았던 눈물을 쏟던 여리고 선한 손열음의 모습을 볼 수 있다. 5월 김해서부문화센터의 관객도 같은 모습을 보면 좋겠다.

한정호
한정호 음악칼럼니스트

월간 ‘객석’에서 클래식과 무용 기자로 활동했고 현재 한국문화 예술위원회 정책 소위원회 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에투알클래 식&컨설팅 대표로 문화 정책 전반에 관한 자문에 응한다. 월간 객석, 아시아경제, 이코노미조선 필자로 활동 중이다.

작성일. 2020. 04.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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