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김해를 여행하는 방법

김해 하면 누구나 한 번쯤은 가봤을 수로왕릉이나 분산성, 구지봉. 가야시대 사람들의 삶을 생각하면서 바라보았던 장소를 새롭게 여행하는 방법이 있다. 일명 ‘금릉로드’라 불리는 이 도보여행은 대략 2시간 정도로 가볍게 김해를 돌아볼 수 있다.

김해시에서는 ‘지재당 강담운(只在堂 姜澹雲)’이 김해의 빼어난 곳들을 노래한 <금릉잡시>와 옛 김해부내지도를 바탕으로 19세기 김해를 떠올려볼 수 있는 도보여행길을 만들었다. 수로왕릉에서 분성광장, 연화사에서 동상시장을 거쳐 다시 돌아오는 코스인데, 이대로 다 가 봐도 무방하고 분산성이나 신어산 등을 추가해도 좋다. 지재당 강담운의 <금릉잡시> 몇 구절이 담긴 팸플릿 하나만 가지고 김해를 거닐다 보면 김해의 풍경이 새롭게 와닿는다.

김해의 사랑꾼, 지재당 강담운

조선시대 여류시인이자 기녀라고 하면 송도(개성)의 황진이나 부안의 이매창을 떠올린다. 김해에도 ‘지재당 강담운’이 있었다. 강담운은 김해의 기녀이자 여류시인으로 김해의 아름다운 모습과 당시 민중의 삶을 노래한 시집 <지재당고>를 남겼다. 그중 <금릉잡시>에는 김해의 아름다운 모습이 생생하게 펼쳐진다. 그녀가 사랑했던 차산 배전(此山裵婰)을 생각하며 김해의 곳곳을 그녀만의 시선으로 노래했다.

燕子樓前楊柳花 연자루 앞 버들개지
楊花燕子夕陽斜 버들개지와 제비가 석양에 비껴나네.
燕逐飛花花逐燕 제비는 꽃을 쫓고, 꽃은 제비를 쫓아
城中散入萬人家 성 안의 여러 집으로 흩어져 들어가네.

연자루는 ‘제비가 드나드는 곳’이란 뜻으로 조선시대 김해 객사 후원에 있던 누각이다. 지금은 남아있지 않지만 조선시대에는 김해에 오면 꼭 들러봐야 했던 ‘금릉팔경’중 하나였다. 밀양 영남루, 진주 촉석루와 함께 영남 3대 누각으로 꼽힐 만큼 명성이 자자했다. 지금 그 자리에 김해 연화사가 있다.

지재당 강담운의 시선으로 김해를 거닐다

연화사 입구에 들어서면 ‘도심 속에 이런 사찰이 있었던가’ 의아함뿐만 아니라 입구를 사이에 두고 정말 시간 여행을 하는 착각이 든다. 커다란 바위 담벼락을 지나면 네모 반듯한 연못에 새빨간 대웅전이 매우 이국적으로 느껴진다.

西望龍蹄雲淡淡 서쪽을 보니 용의 발굽 구름이 뭉실뭉실
使君禱雨馬回遲 고을 원님 기우제 올리고 말 천천히 돌아가네.
暮入涵虛紅燭爛 저물녘 함허정에 붉은 촛불 밝히니
女娘爭唱白鷗詞 아가씨들 노래하고 백구는 시를 쓰네.

현재 연화사 대웅전 자리에 과거에는 함허정이 있었다. ‘하늘을 담는다’는 뜻으로 함허정 연못에 핀 연꽃은 금릉팔경 중 하나였다. 정자는 없어졌지만 함허교(涵虛橋)라 새긴 비석과 팔각 주춧돌 하나가 옛 함허정의 흔적으로 남아 있다.

지재당 강담운의 <금릉잡시> 속 김해는 친근하다. 가야의 대단한 유적지가 아닌 우리 이웃 동네처럼 정감이 넘친다. 사랑하는 차산 배전과 함께 보고 싶고 거닐고 싶은 곳이다.

春水如雲漲虎溪 봄물 구름같이 호계에 넘치니
浣紗人隔水東西 빨래하는 사람들 호계 양쪽으로 나뉘었네.
盡日子規啼不盡 온종일 두견새가 울어대고
二陵寒食草萋萋 두 능은 한식에도 풀이 무성하네.

지금은 복개(覆蓋)했지만 옛날에는 분산에서 내려오는 하천 호계가 있었다. 호계천의 저녁 노을도 금릉팔경 중 하나였다는데, 그때의 김해는 얼마나 더 예뻤을지…. 마지막 구에 나오는 두 능은 수로왕릉과 허왕후릉이다. 4대 명절 중 하나인 한식에도 풀이 무성한 능원(陵園)을 상상하니 어쩐지 쓸쓸해진다. 100년 전 사람들의 일상을 상상하며 김해의 유적지를 돌아보자니 새삼 묘한 기분이 든다. 김해를 왜 김해 사람들이 ‘금릉’이라 불렀는지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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