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시 분성로335번길 44 일원
주택단지 가운데 김해읍성이 있을 줄 몰랐다. 과연 ‘이런 곳에 성벽이 있을까?’ 의심이 들기 시작할 즈음 멀리 오래된 성벽이 보인다. 김해읍성은 분성산에 위치한 분산성(盆山城)과 달리 평지에 위치한 평지성이다. 지형을 활용할 수 없어 방어에 불리할 것 같지만, 수원 확보나 공간 활용 면에서는 매우 유리한 이점을 가지고 있다.
김해읍성은 세종 때 축조된 것으로 기록으로 확인할 수 있는데, <세종실록(世宗實錄)>에 의하면 병조에서 세종에게 김해읍성을 시축(始築)해야 한다고 아뢰는 내용이 확인된다. 현재 남아 있는 김해읍성은 북문인 공진문(拱辰門)과 옹성으로 현종 7년(1666)에 부사 이화악이 중건한 것을 복원한 것이다. 2006년부터 <김해부내지도(金海府內地圖)>등의 고지도류와 각종 문헌을 참고해 2008년 3월 완성했다. 복원된 북문문만 보더라도 김해읍성이 과거에는 얼마나 위풍당당하게 자리를 지켰을지 상상이 된다.
김해읍성 북문 한 바퀴
<김해부내지도(金海府內地圖)>를 보면 김해읍성에는 동서남북으로 4개의 문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된다. 해동문(海東門)부터 해서문(海西門), 진남문(鎭南門)까지 지금은 남아있지 않은 3대문도 떠올리며 공진문 성벽을 따라 걸어본다.
외부 계단이나 내부는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출입이 제한돼 성벽을 한 바퀴 산책하는 것이 현재 할 수 있는 관람의 전부다.
김해를 돌아다니다 보면 가야 유적이나 고분군은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었는데, 김해읍성은 조선 초기의 유적이라 걷다 보니 새삼 특별하게 느껴진다. 차곡차곡 튼튼하게 쌓아 올린 성벽이 햇살을 받아 빛이 난다. 과거에는 백성들을 지켜주던 읍성의 둘레를 고마운 마음을 담아 껴안듯 걷는다.
동상동과 서상동 숨은 김해읍성 찾기
김해읍성을 나와 서상동 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이길 아래에도 읍성의 흔적이 남아 있지 않을까 생각하니 기분이 묘해진다. 2017년 서상동 222-2 일대에서 김해읍성의 성벽과 해자(성벽을 방어하기 위해 만든 인공 하천)의 석축이 발견됐다. 확인된 성벽의 높이는 2m, 길이는 23m 정도다. 해자의 석축은 성벽에서 서쪽으로 9m 정도의 거리를 두고 성벽과 나란한 방향으로 확인된 동쪽 석축으로, 서쪽 석축은 경계 밖인 현도로 아래에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김해읍성의 흔적은 동상시장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바로 유공정(柳公井)이란 우물이다. 1592년 임진왜란 당시 왜군들이 김해읍성으로 유입되는 물길을 막아 식수가 단절되자 의병 유식(柳湜) 선생이 성안을 돌아다니다 이곳에 우물을 만들었다. 우물 옆에는 선생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유공정비도 남아 있다.
북문과 유공정 외에는 김해읍성의 모습을 상상하며 산책한 게 대부분이지만 앞으로 김해읍성과 관련된 더 많은 유물과 유적을 만날 수 있길 기대한다. 선선한 바람을 벗 삼아 김해에서 가야를 넘어 조선의 역사를 만나보자.
김해읍성북문
해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