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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人

김해문화재단, 문화의 문턱을 낮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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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함께한 순간
첫 번째 가치가게 비둘기 영어학당

비둘기 영어학당은 오대양 육대주를 두루 경험하고 돌아온 변선령 씨가 8년간 운영하고 있는 학당이다. 봄 햇살이 살포시 내려앉은 돌담길을 그윽하게 바라보고 있는 가치가게. ‘예술’을 가치로 선택한 그곳에서 변선령 씨를 만나 그가 걸어온 추억의 길을 함께 거닐었다.

비둘기 영어학당
주소 김해시 가락로93번길 19-2(서상동)
문의 055-322-0029

거기서부터 한 발 한 발

사춘기 시절과 이십 대 청춘, 그는 캐나다, 유럽, 영국, 네덜란드, 스웨덴 등에 거주하며 공부와 일을 했다. 오랜 외국 생활을 접고 고국에 돌아왔을 때는 서른이 넘은 나이였다. 부모님을 따라 김해에 살게 되고, 통역가로 얼마간 활동하다가 바쁜 스케줄에 몸이 안 좋아져 일을 놓았다. 그리고 8년 전 어느 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까 물음표를 품고서 수로왕릉을 거닐었다. “엄마랑 산책했는데, 이곳 분위기가 너무 좋더라고요. ‘여기서 일하고 싶다!’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뭘 할지 아무 계획도 없는 상태에서 덜컥 가게를 얻어버렸죠.”
여기저기 떠돌며 지친 몸과 마음이 본능적으로 뿌리내릴 곳을 찾은 것일까. 허나 주위 반응은 냉담했다. 있는 것이라곤 노인과 비둘기뿐인데 뭘 할 거냐는 핀잔이었다. 그래도 그는 내디딘 첫발을 물리지 않았다. 거기서부터 한 발 한 발. 작은 도전들로 새 삶은 이어져 나간 것이다. 비둘기 영어학당이라는 이름도 그때 지었다고 한다. “조금 단순하고 소박한 이름을 원했어요. 새마을호 무궁화호보단 못하지만, 추억 속의 비둘기호가 마이너한 제 감성에 어울린다고 생각했죠.” 고속열차가 아닌 완행열차에서 이름을 따온 것도, 작고 소박한 것부터 차근차근 이루어가는 것이 인생이고 예술이라는 그의 철학이 묻어난 것이다. 초창기에는 영어학원 이름이 이상하다며 사람들이 웃는 바람에 주눅 들고 부끄러웠지만, 점점 학당이 번창해가면서 동네에 조금 있던 비둘기들도 지금은 꽤 많아지고 자신감과 뻔뻔함도 그만큼 커졌다며 그는 활짝 웃어 보였다. 선생님을 따라 배우는 이들도 점점 뻔뻔해져 간다는 말과 함께.

소박해서 행복한 영어

학당 수업은 토론으로 진행된다고 한다. 학당이 선택한 가치 ‘예술’에 대한 토론을 하려면 영어실력이 상당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나는 회화 실력이 좋지 않은데 어떻게 이런 걸 할 수 있겠어? 첨엔 다들 두려워하세요. 근데 렘브란트나 피카소를 논하는 것이 예술 이야기가 아니라, BTS 얘기를 해도, 여기 가야문화축제 얘기를 해도 그게 예술 이야기거든요.” 뭔가 대단한 예술이 아니라 일상에서 누릴 수 있는 예술, 평범한 예술을 논하고 싶었다. 삶의 여정을 통해 본새, 즉 태도나 됨됨이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되었다는 그는 7:1 토론 수업을 뽄새살롱이라 이름 지었다. 그리고 특유의 위트와 다양한 문화·예술적 경험을 바탕으로 배우는 이들과 함께 다채로운 방식으로 화두를 풀어나간다. 토론자들은 영어라는 제2의 언어를 통해 또 다른 내가 되어 여러 주제를 서로 교감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점점 자신의 삶을 새롭게 바라보게 된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진짜 영어를 체득하게 되는 것이다. 학당이 내건 슬로건도 남달랐다. ‘등 따시고 배부른 영어’가 그것이다. “돼지국밥 따뜻하게 한 그릇 먹고 뜨끈한 아랫목에 누우면, 그 얼마나 행복하고 소소해요. 로또에 당첨되고 그런 건 아니라도 충분히 만족할 만한 것. 이곳에 오시는 분들에게 영어가 그런 것이었으면 좋겠어요.” 부담스러운 영어가 아니라 자신이 만족하는 만큼만 매일의 일상에 스며드는 영어, 소박하게 행복할 수 있는 영어가 되기를 바라는 그의 마음이었다.

학당 유리벽을 장식하고 있는 가치가게 미니부스에는 미니멀 디자인의 아날로그 벽시계가 전시되어있었다. 하늘에서 솜사탕이 몽실몽실 돌아가는 몽환의 다이얼. 거리에 뽀얗게 내려앉은 봄볕이 실오라기가 되어 솜사탕에 감기고 있었다. “아! 시간이 예쁠 수 있겠구나! 정민지 도예가님의 시계를 보자마자 든 생각이었어요. 우리가 함께한 시간들 중에서 가끔씩 너무 예쁜, 그래서 박제하고 싶은 순간들이 떠올랐어요. 그 순간들도 어김없이 흘러가겠지만, 예쁘게 모여 추억으로 경험으로, 아름답게 남아있겠죠.” The Moment We Shared. 우리가 함께한 순간들이 아름다울 수 있다면, 우리는 아름다운 사람이리라.

가치가게란? 가치가게는 도시의 미래를 생각하는 가치, 서로 함께하는 가치를 담아 실천하는 가게를 뜻합니다. 예술, 다양성, 역사, 환경, 나눔의 5가지 가치 중 하나 이상을 선택하여 그 가치를 나타내는 작품을 미니부스에 전시하는 등 함께 즐기며 살아가기 위한 작은 실천을 하고 있습니다. 사회적 가치를 실천하는 점들이 모여 공존과 환대의 거리를 만들고, 그 거리들이 면으로 모여 도시 전체로 퍼져나가는 것이 가치가게 프로젝트의 목표입니다.

글. 정의성 에디터 사진. 권순일 포토그래퍼

※ 지난 3월호(98호)를 마지막으로 ‘한우물가게’ 연재는 종료했습니다. 이번 4월호부터 본지에서는 도시의 미래 가치를 실천하는 ‘가치가게’를 매달 한 곳씩 다룹니다.

작성일. 2021. 03.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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