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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人

김해문화재단, 문화의 문턱을 낮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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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줄 현으로 마음 울리는 ‘젊은 명인’ 이서영
“우리 것의 고귀함을 계속 연주할 거예요”

국악을 찾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국악이란 우리 정서를 우리 식의 음악 어법을 통해 풀어낸 음악이다. 그러나 그간 국악은 그 가치만큼의 대접을 받지 못했다. 산업화된 서구 사회를 따라잡기 급급했던 우리는 서양 음악을 앞선 것, 좋은 것으로 생각했다. 국악을 접할 기회조차 쉽게 주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우연히 듣게 된 가야금, 피리 소리에 가슴이 먹먹해지며 깊은 감동을 느껴 본 적이 있을 터. 국악을 통해 우리 것에 마음이 끌릴 수밖에 없는 한국인의 성정을 발견한다. 서양 음악에서는 느낄 수 없는 우리 고유의 소리가 점차 주목받고 있는 이유다. 이에 따라 일반인들이 국악을 쉽게 접할 수 있도록 하는 새로운 시도가 이어지며 국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새로운 변화 중 하나는 국악과 멀게만 느끼던 20, 30대의 사람들이 국악판으로 뛰어들고 있는 것이다. 젊은이들이 국악의 판도를 바꾸고 있다. 그중 ‘제30회 김해전국가야금경연대회’의 일반부 기악 부문에 출전하여 대상인 대통령상을 수상한 이서영 명인의 이야기를 시작해 본다

국악 소녀를 넘어 젊은 음악가로

이서영 명인은 1992년 진주에서 태어났다. 일곱 살 때 아버지 지인의 권유로 가야금을 처음 접했다. 집안이나 주위에 국악을 하는 사람이 없어 국악기가 생소했지만 그런 만큼 소녀 이서영에게 가야금은 처음 느껴 보는 신선함이었다. “현을 뜯고 튕기면 소리가 나고, 아리랑을 연주하며 노래를 부를 수 있다는 게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색다르고 놀라웠습니다. 당시 가야금과 피아노를 동시에 배우기 시작했는데 제겐 가야금이 훨씬 더 적성에 맞았어요. 무척 재미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호기심은 재능 개발의 출발점이다. 소녀는 ‘신기하다’에서 끝내지 않고 가야금을 요리조리 만지고 현을 튕겨보며 본격적으로 관찰하기 시작했다.

소녀 이서영은 어린 나이였지만 가야금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일곱 살 때부터 느꼈던 가야금의 첫인상이 꾸준했던 덕일 것이다. 그래서 국악 전문학교에서 체계적으로 공부하고자 6학년 2학기에 상경하여 국립국악중학교·국립국악 고등학교에서 수학했다. 이후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국악과에 진학하여 솔로·단체 활동 등 다양한 무대 경험을 통해 연주자로서의 성취감을 쌓아 나갔다. 대학 졸업 후에는 실내악 팀에서 잠시 활동했다. 현재는 가야금 공부를 위해 활동을 중단하고 모교인 국립국악중 강사로 근무하며 학업에 매진하고 있다. “어릴 때는 가야금이 재미있어서 연주 했다면 이제는 제 안에 가야금이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에 그 비중만큼 무게감을 느낍니다. 그렇기에 연주 경험을 많이 쌓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야금 공부와 연구 또한 게을리하지 않을 거예요.”

“가야금은 또 다른 ‘나’입니다”

가야금을 시작한 지 1년 만에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집안 형편에 큰 어려움이 생긴 적이 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가야금 연주를 그만두라고 하셨어요. 그 무렵 가야금에 한창 재미를 붙였고 재능이 남다르다는 칭찬을 받던 때라 포기하기 싫었습니다. 울면서 애원했던 기억이 나요. 작은 몸으로 감히 가야금을 지켜 냈죠. 어머니께서도 생각보다 큰 저의 간절함에 놀라셨던 모양이에요. 그때부터 어머니께서 어려운 형편에도 저를 연주회에 데리고 다니시면서 제 꿈을 지켜주셨습니다. 하지만 어머니의 노고에도 불구하고 위기는 많았어요. 초등학교 6학년 때 맞추었던 한복을 고등학교 2학년까지 입었습니다. 어머니께서 몇 년간 입히실 계획으로 저고리는 큰 사이즈로 주문하셨고, 치마는 한 뼘이나 여유분을 넣어 몇 차례나 수선해서 입었던 가슴 아픈 추억도 있습니다.”

“성인이 된 지금, 힘들 때마다 그때를 떠올리곤 합니다. 제가 지금까지 가야금을 연주할 수 있는 이유는 그때의 저, 부모님과 선생님 등 여러 사람의 노력 덕분이에요. 힘들었지만 소중한 기억이죠.” 대다수의 국악인이 그렇듯, 이서영은 지금까지도 하고 싶은 공부가 숱하지만 경제적 이유로 미루고 있는 것이 많다. 넘쳐나는 열정만큼 조급한 심정이 있지만 이서영은 침착하게 자신만의 속도를 유지할 것이다. “아주 어릴 때부터 가야금과 함께했기에 제 명이 다할 때까지 가야금과 함께할 겁니다. 지금까지 그래왔듯 제가 포기하지 않는 한 가야금과의 인연은 끊기지 않을 거라 믿어요. 이제 가야금은 제 분신, 또 다른 저예요.”

가야금의 새로운 가능성, 이서영

이서영은 지난 8월 김해시가 주최하고 (재)김해문화재단이 주관하는 ‘제30회 김해전국가야금경연대회’의 일반부 기악 부문에서 대상인 대통령상의 영예를 안았다. “제게 김해가야금축제는 아주 특별합니다. 김해전국가야금 경연대회에는 초등학생 때 두 번 참가하여 입상과 초등부 대상을 받기도 했어요. 대학교 1학년 때는 김해가야금페스티벌에 서울대 팀으로 참가했어요. 대학교 3학년 때 다시 경연 대회에 참가하여 대학부 대상을 수상했고, 2018년에는 일반부 최우수상을 받았어요. 그리고 올해 일반부에 재도전하여 대상인 대통령상을 수상할 수 있었습니다. 김해는 저의 가야금 인생을 함께한 곳이에요. 가야금 대회의 시작과 마무리를 김해에서 잘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 김해문화재단 그리고 지금껏 저를 가르쳐 주시고 응원해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이서영은 <김병호류 가야금산조> 음반을 발표할 예정이다. 이번 달 14일(토)에는 민속극장풍류에서 (사)가야금병창보존회의 정기 행사인 <향음재>공연에 참여한다. 대통령상 수상을 계기로 더욱더 겸손하고 성실한 자세로 국악에 정진하고, 가야금의 전통을 이어받아 우리 것을 널리 알리는 데 주력할 것이다. “우리 것의 소중함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 소중함을 대중들에게 풍부히 보급하고 싶습니다. 국악이 더 이상 낯선 게 아니라 대중음악처럼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말입니다. 우리 것의 고귀함과 정체성을 지키는데 힘을 보탤 수 있다면 제 연주는 멈추지 않을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 도전은 아마 계속되겠죠?(웃음).”

글 이채린 에디터 / 사진 제공 이서영

작성일. 2020. 10.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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