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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문화재단, 문화의 문턱을 낮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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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운의 ‘영국의 땅끝’과 야로센코의 ‘삶은 어디에나’
희망을 그린 그림들

‘코로나19’로 인해 2020년은 봄이 사라진 해가 되었다. 전 지구적으로 수많은 사람이 고통과 어려움을 겪고 심지어 안타깝게 생명을 잃은 희생자도 많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희망을 잃지 말아야 한다. 희망만큼 큰 위로는 없다. 이번 호에서는 고통 속에서도 희망을 꿈꾸는 사람들을 그린 그림을 감상해 보자.

절망의 시대에 발견한 희망의 순간

영국의 화가 ‘포드 매독스 브라운’의 작품 <영국의 땅끝>은 낯선 곳에서 희망을 찾으려는 사람들을 그린 그림이다. 브라운이 그림을 완성한 1854년은 영국에서 이민 행렬이 절정에 이른 해다. 무려 36만 9천 명이 영국을 떠났다. 브라운 또한 이 무렵 인도로 이민 갈 것을 심각하게 고민 했다고 하는데, 그만큼 예술가들의 생존 환경 역시 좋지 못했다. 브라운의 친구 조각가 토마스 울너는 5년 동안 단 한 건의 작품 주문도 받지 못해 아사할 지경에 이르자 그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결국 호주로 이민을 갔다. <영국의 땅끝>은 희망과 함께 생존의 땅끝에 이른 예술가들의 절규도 담고 있는 그림이라 하겠다.

그림을 보자. 원형의 화면 한가운데 젊은 부부가 클로즈업되어 있다. 그들의 표정은 매우 비장하다. 이제 떠나면 다시 오기 어려운 고향 땅, 오로지 미지의 땅에 모든 희망을 건 이민자로서 정든 과거와 절연하고 있다.

이제 그들이 새로 엮어갈 인연의 끈은 오로지 미래를 향해서만 뻗어 있다. 여인의 왼손으로 숄 한가운데 아기의 고사리손을 부여잡은 모습이 보이는데, 아기의 손은 새롭게 피어나는 희망의 새싹처럼 보인다. 아이에게만큼은 행복하고 풍요로운 미래를 물려주고 싶다는 부부의 결의가 아리게 다가온다. 매서운 칼바람도, 지금 이 순간의 서럽고 복잡한 감정도 싹을 틔우기 위한 훌륭한 거름이리라. 그렇기에 붉게 상기된 부부의 얼굴은 다가올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있다는, 꼭 그렇게 해야만 한다는 결의에 차 있는 것이다.

부부 뒤편에는 순박한 아이들을 부여잡은 다른 한 가족이, 그 뒤에는 술에 취해 주정을 부리는 또 다른 가족이 그려져 있다. 취객은 그동안 자신이 겪은 모든 고생과 실패가 나라 탓인 양 대놓고 제 나라를 욕한다. 어머니 혹은 부인인 듯한 여인이 앞에서 손을 들어 그를 만류하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떠나는 사람이 이처럼 과거에 한을 품고 과거에 집착하는 것은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다. 과거의 한이 크면 미래의 희망은 빛을 잃는 법이다. 그래서 떠날 때는 말 없이 가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인생지사 새옹지마’라 했다. 지금 먹을 거라고는 그물에 달린, 바닷바람 맞은 양배추뿐일지라도 부부의 꼭 잡은 손처럼 오로지 희망만을 부여잡은 사람은 결국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들이 될 것이다. 천국의 곳간을 채우고 있는 것은 돈이 아니라 희망이다.

삶 속에서 그린 희망

러시아의 화가 ‘니콜라이 야로센코’의 <삶은 어디에나> 역시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희망을 놓치지 않으려는 사람들을 그렸다.

기차가 가다가 역에 멈춰 섰다. 이 기차에 탄 이들은 부유하거나 권세 있는 이들이 아니다. 수염이 덥수룩한 농부와 젊은 병사, 중년의 노동자, 무표정한 어머니로부터 우리는 삶의 무게에 짓눌린 고달픈 인생을 본다. 차창에 쇠창살이 박힌 것으로 보아 이 사람들은 불편한 공간에 갇힌 채 강제로 이송을 당하는 것 같다. 그야말로 ‘막장 인생’처럼 보인다.

하지만 희망은 어디나 있고 또 희망은 소소한 일상의 표정으로 피어난다. 비둘기를 발견한 아이가 빵을 뜯어 모이로 내주자 비둘기들이 차창 아래로 모여든다. 이로 인해 갑작스레 주변이 부산해졌다. 활기마저 돌기 시작한다. 왼쪽 하단의 작은 참새는 커다란 비둘기들 사이에서 먹을 것을 얻어 보려 계속 틈을 노린다. 생명의 의지는 이렇게 강한 것이고, 또 소중한 것이다. 누구도, 어떤 순간에도 이 의지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

어머니의 지친 표정과는 달리 모이를 주는 아이의 얼굴은 환하다. 자신이 처한 어려운 현실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고 오로지 비둘기와 노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 힘겨운 환경에서도 아이는 이 웃음으로 튼튼하게 자라날 것이다. 희망으로 보다 나은 미래를 개척해나갈 것이다. 눈가에 근심이 드리운 어머니는 스스로가 아이에게 크게 부족한 어머니라고 생각하겠지만, 아이는 세상에서 자기 어머니만큼 훌륭한 어머니는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고 보니 베일을 쓴 어머니의 모습에서 왠지 자꾸 성모 마리아가 연상된다. 아이로부터는 아기 예수의 모습이 떠오른다. 절망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희망이 있고, 희망이 있는 곳에는 신의 은총 또한 머물러 있다.

희망은 사람을 움직이는 가장 큰 동력

정호승 시인은 <희망은 아름답다>라는 시로 “희망은 결코 희망을 잃지 않을 때만 아름답다”고 노래했다. 희망은 원하는 조건이 충족되어 갖게 되는 기대가 아니다. 조건이 충족되지 않았기에 갖게 되는 것이 기대다. 희망은 그 바람이 아직 현실로 이뤄지지 않았기에 존재하고, 그렇게 근거가 없는 것이기에 아름답다. 현실 앞에서 포기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오히려 현실적 조건이 어렵기에 더욱 꿈과 의지를 다잡는 것이어서 아름답다. 희망이 사람을 움직인다. 근거가 분명하지 않지만, 조건이 충족되지 않았지만, 우리는 희망이 있기에 결코 우리의 꿈과 목표를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희망을 잃지 않은 이에게 가장 큰 축복은 희망을 잃지 않았다는 사실 그 자체다. 그런 점에서 희망은 사람을 움직이는 가장 큰 동력이라 할 수 있다. 영혼과 희망을 먹고 성장하고 성숙한다.

이주헌
이주헌 미술평론가

홍익대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했으며, <한겨레신문> 미술 담당 기자를 지냈다. 학고재 갤러리 관장, 서울미술관 관장을 역임 했다. 현재는 미술평론가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는 <이주헌의 서양미술 특강>, <지식의 미술관>, <50일간의 유럽 미술관 체 험> 등 30여 권이 있으며, 대중 강연 활동도 활발히 하고 있다.

작성일. 2020. 04.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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